[ 태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태국 장거리 버스여행

아저씨 마음대로 휴게소, 태국 장거리버스


태국에서 장거리 이동을 할때는 참 많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곤 하는데, 카오산에서 에라완으로 가고싶어했던 내 경우에 툭툭에서 롯뚜를 타고 거기서 또 장거리버스틀 타고 이동해야했다. 너무 잦은 갈아타기에 지레 스트레스부터 받고 시작했지만 사실 알고보니 명동에 숙소를 잡고 남이섬을 가고싶어하는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카오산에서 에라완까지 가는방법중 번거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한큐에 택시를 타는 방법을 생각해보지않은것도 아니었다. 이런저런 수고스러움을 덜고 국내비용에 비해 얼마하지않는 택시비도 혹하긴 했지만, 그정도 택시비면 태국에서 꽤 많은것들을 더 누릴수있다는것을 생각하고 나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툭툭을 타고 롯뚜로 장거리를 이동한 다음 드디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물한모금 사마시고 장시간 앉아서 뻣뻣해진 척추좀 펴보려는데 에라완으로 출발하는 버스가 빨리오라고 손짓한다. 먼저가라고 사양해도 나를 태연히 기다리면서 같이 출발할 제스춰를 취하는것을 보고 나는 자포자기한채 숨한번 돌리지못하고 터미널 구경은 커녕 매점 근처도 가보지 못한채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마음이 여유로운 버스기사의 호의


조용하고 내성적인 부끄럼많은 태국사람들 치고는 버스가 요란하다. 버스외관부터 화려하다 했는데 내부도 정말 휘영찬란하게 온갖컬러를 다 가져다 썼다. 여기저기 매달려있는 소소한 장난감들과 유리창에 붙어있는 온갖종류의 스티커들외에도 버스안에서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가 넘는색을 넓은면적으로 다 찾아볼수가 있다


운전석 뒤에 현지여중생이 걸어놓은 가방을 신경도 쓰지않고 버스기사는 시내를 급하게 빠져나가 한참을 운전하더니 갑자기 도로한가운데에 차를세워두고 밖으로 나간다. 노점상쪽으로 걸어가 꽈배기같기도하고 튀김같기도 한 간식거리를 사들고 버스안으로 돌아와 우걱우걱 배를채우면서 운전을 시작했다. 한손은 창밖으로 팔을 빼고, 간식을 든 손은 핸들을 잡고, 입은 바쁘지만 마음만은 참 여유롭다


몇차례 더 노점상을 지나갈때마다 버스기사는 창밖으로 간식거리의 가격을 묻기도 하고 자유스럽게 내려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오기도 하는등 이방인의 눈에 꽤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별다른 내색없이 맨 앞좌석에 앉아서 전면유리로 풍경을 구경하던 나에게 호의로 간식거리를 건넸는데 나도모르게 사양하는 제스춰가 나왔다. 생각하기에 앞서서 우선 사양하고 보는 버릇이 있다는것을 해외여행도중 종종 깨닳고 나도 흠칫 놀라곤한다. 성의를 생각해서 받는 시늉이라도 할껄, 다행이 버스운전수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버스에 달린 모든문은 바람을 위해 열어놓는것


| 버스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바람이 시원해서 필요가없다


두시간가량을 버스타고 이동해야하는데, 버스안에는 3명이 채 되지않는 로컬 현지인들과(그둘중 둘은 얼마 가지않아 바로 내렸다) 맨 뒷자석에 친구인듯 나란히 앉아있는 금발의 백인들, 나와 운전기사를 포함해서 6명 뿐이다. 태국은 가만히 있어도 등에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던데 비수기에 여행을 간 덕분인지, 사방이 닫히지않는 창문때문인지 버스안은 시원하다


태국의 버스는 문을 열어놓은채 운행하는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게 싫어서 억지로 닫아보려고 했지만 본드로 강하게 고정시켜놓기도 했고, 깨진창문을 대충 수습해놓은것도 있어서 강제로 닫으려다가는 깨진 유리창에 문제가 생길것 같아 헤어스타일을 포기하는편이 마음편했다


그나마 창문은 열려있는게 이상하지않지만, 태국 버스는 출입문도 열어놓은 상태로 2시간 넘는 거리를 달린다. 앞문도 열려있고 뒷문도 열려있는 상태로 한적한 도로를 신나게 달리는데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차 밖으로 뎅굴 사람이 나가떨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도 모두가 자연스럽다. 좌석이 부족하면 뒷문에 사람이 매달려서 달리기도하는데 내게는 긴장되고 위험해 보이는 풍경임에도 현지인들에게는 문을 닫지않고 운행하는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닫을생각조차 안해본것같다




연두, 봄길같은 풍경을 한시간 넘게 누리다


그새 버스운전수는 간식을 바꿨고, 도로는 연두색 가득한 가로수길을 한시간 넘게 달리고있었다.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전면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연두색 길은 너무 차분하고 소박하게 아름다워서 눈이 스르륵 감길것만 같았다. 기분좋은 봄볕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따뜻한 기분으로 잠이 솔솔 오는것처럼 버스를 타고 에라완으로 가는길이 좋았다


항상 장거리 이동에 멀미를 하곤하는데 도로포장상태도 양호하고, 오늘은 멀미도 없다. 여행하면서 만족감을 주는 차창사이로 지나치는 풍경들은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위압감을 주는 모습이 아니라, 친근한듯 다른듯 일정시간을 반복해서 봐도 질리지않은 풍경인것같다


초록이 아닌 연두빛으로 가득한 길은 한시간을 지나도 계속되었는데 햇빛과 바람과 색이 너무 잘 어우러져서 이 소박하게 아름다운 풍경때문에라도 다시 이 버스를 타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데리고 이길을 달리고싶다는 생각을 할만큼 사랑스럽고 예쁜길이었다




두세시간만에 느듯함에 물든 사람들, 걱정과 조바심을 잃어버리다


한참을 달리다가 또 버스기사가 사라졌는데, 처음에는 웅성거리던 외국인들도 이젠 사라지거나 말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나역시도 [새로운 간식을 사러갔거나 화장실에갔겠지 뭐]하고는 신경조차 쓰지않았는데 십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않는다. 지루하기도하고 약간은 걱정도 되는 마음에 하나둘 담배를 피러 길가로 나가기도 하고 바람을 쐬러 나가있는 사람들이 늘었다


배낭을 들고 움직이는게 싫어서 가만히 앉아있던 나도 주섬주섬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는데, 한참있다 버스운전수가 두손에 흰통을 들고 나타났다. 뭐가 고장난건지, 기름을 다 소비한것인지 1.5리터 페트병으로 깔대기를 만들어 뭔가를 들이붓는것을 보니 연료가 다 떨어졌던것인가. 길에서 꽤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도 아무도 불만스러워하지 않는다


이럴수도있고 저럴수도있는 시골스타일에 그새 나도 익숙해진것인지 태연하게 기름을 넣고 운전수가 차에 올라타자 승객들도 하나둘 올라타고 차는 출발한다. 아까까지는 사람이 6명이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꽤많은 사람들이 차에 타있다. 에라완으로 가는길, 막차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것을 알고있는 나인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조급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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