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차나부리 / 태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수줍은 만남, 사랑스러운 아이

수줍음을 넘어서 친해지는데 걸리는 시간



늦은시간 리조트에 도착한 나는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기 위해 팟타이와 맥주를 주문하고 앉아있었다.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고 적막만 가득한곳에 TV소리만 계속 나고있었는데 태국왕실과 일반 평민여자의 사랑과 신분상승에 관한 눈물없이는 볼수없는 드라마가 방송되고있었다. 치렁치렁한 옷을 입은 사극속의 이야기에 빠져서 카운터에서는 내가 주문한 맥주를 계속 잊고있었다. 무려 네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서 겨우 얻을수 있었으니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팟타이를 씹고있었다


이 리조트에서 일하고있는 또다른 아주머니인듯한 한분이 가볍게 내게 인사하더니 맞은편 테이블에 앉았다. [빨리공부해야지, 우리애가 공부를 안하려고 해서 큰일이예요 호호홍]나를보며 쑥쓰럽게 웃으면서 건낸 대화는 대충의 뉘양스로 이정도였던것 같다


기둥뒤에 숨어있던 7살쯤 되보이는 아이는 교복을 입고있었는데 여간 사랑스러운것이 아니었다. 이미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사방팔방에 [나는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어요. 받아라 하트오오라!]를 뿌리고다녔다. 애교로 중무장한 그녀는 엄마에게 잡혀와서 마지못해 레스토랑 테이블에 앉혀졌지만 집중력을 발휘하기에는 세상에 즐거운일이 너무 많아보였다




엄마의 하루가 끝나고 시작되는 모녀의 시간


식당에서 밤늦은 시간이 되고나서야 아이 키에도 맞지않는 식사테이블에서 딸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엄마의 삶과 고단함은 안봐도 비디오였지만 아이의 비비꼬면서 잠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자세에서 이미 공부는 글렀다는것을 알수있었다. 


받아쓰기 숙제를 제대로 했는지 엄마가 검사하는동안 배운 페이지의 사물에 대한 명사를 읽게 시켰지만 사랑스러움으로 중무장한 딸은 입도 뻥긋하지않고 온갖 잡다한 다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있었다. 슬쩍 본 책은 지금 내가 태국어를 배운다면 저런 그림책에 단어 한자 한자겠지 싶을만큼 한장에 10개의 단어밖에 되지않았다. 나야말로 궁금했다. 닭이 태국어로 뭘까. 저 아이가 소리내서 한 단어만 제대로 읽어준다면 [치킨]이라고 주문하지 않고 태국어로 닭을 주문할수 있을텐데, 난 태국에와서 [코모도]와 [팟타이]아직 두단어밖에 배우지 못했다


늦은 저녁시간을 맥주로 만끽하고 있던 내가 두시간 넘게 테이블에 앉아있을동안 나는 닭이 태국어로 뭔지 알수없었다. 닭을 어떻게 읽냐고 물어봐도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몸을 베베 꼬기만 하고 미소만 날리다가 은근슬쩍 내 손을 잡아보고 팔을 쓰다듬어보면서 스킨쉽으로 밀당을 유지하던 아이는 자신의 하루를 재잘거릴 뿐, 교과서에 있는 단어를 하나도 내게 가르쳐주지않았다




사랑받는 아이, 부끄럼쟁이


날이밝고 일정을 소화하기 전 배를 채우기 위해 다시 식당에 앉았을땐 아마도 출장중인듯 싶은 일본인들이 조식을 먹고있엇다. [오하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잡고앉아서 샌드위치를 가지고 오고보니 일본인들이 좋아할만한것 같은 리조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거트를 떠먹고 있을때쯤 하루만에 익숙해진 재잘거리는 예쁜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봤더니 아이가 아침부터 리조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도 요거트를 먹으라면서 아이뒤를 따라다니고, 카운터의 아주머니도 사소한 대답 한마디를 듣기위해서 끊임없이 말을건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예쁨을 듬뿍받고있었구나


아이는 이사람 저사람을 다 제치고 내게 오더니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저기 달마시안이 있던데 커서 무서워. 너는 만질수 있니?]라고 말을건넸지만 역시나 누군가가 원하는 질문에 대답을 바로 주는 아이가 아니였다. 싱긋 웃고는 도도도 달려나가서 잽싸게 싸라지고 말았다




사랑스러운 친절, 귀여운 기다림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올때쯤 한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봤더니 밤새 카운터아래 숨어서 나오지는 않고 컹컹 짖어대던 달마시안을 아이가 데리고 나와있었다. 부끄러움을 몸에 그대로 담은채 만져도 물지않는다고 슥슥 만지는 제스춰를 취하는걸 보니 일부러 나오기 싫어하는 개를 데리고 나와서 나를 기다렸나 싶었다


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달마시안 말고 아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주고싶었지만, 성의를 무시할수는 없지. 성격이 예민한 달마시안을 쓰다듬어주면서 예쁜개라고 칭찬을 해주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서 한참을 달마시안을 같이 쓰다듬어야 했다. 원치않게 아침부터 한국마사지와 태국마사지를 받은 달마시안은 경계를 쉽게 풀지않았지만 아이가 괜히 사랑스러운 오오라가 쏟아져나온것은 아니였구나 싶었다


밤새 내게 관심많던 아이는 내 손을 만지작거리면서도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은 하나도 안해주더니 내게 이런종류의 도움은 줄수있다고 생각했나보다. 친구를 만질수있게 도와주는것쯤이야




여행은 언제나 친해질만하면 안녕!


부끄러움에 언제나 몸을 베베꼬던 아이는 헤어질쯤 되서야 기둥뒤에 숨지않고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교복을 입히기에는 아이가 너무 어리고 작다. 그동안 그렇게나 부끄러워하더니, 용기내서 슬쩍슬쩍 내손을 잡던 아이는 이제 친해질 준비가 된것같지만 인연은 언제나 짧다.


조금더 빨리 친해졌더라면 손잡고 동네도 걸어다니고 내 가이드를 부탁할수 있었을텐데 그러면 [닭]이라는 단어도 배우고 조금 더 많은 글자를 나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 


내가 떠날때가 되자 아이의 엄마가 가야할 길의 방향과 차타는 곳의 위치를 세세하게 가르쳐주시면서 내게 연락처를 주고 무슨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했다. 나쁠일이야 없겠지만 마음써서 주신 종이를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고 이곳과 작별을 했다. 이대로만 자란다면 태국 왕실과의 사랑이야기 사극에 캐스팅하기에 좋을 예쁘고 사랑넘치는 소녀가 되있을것 같은 예쁜고 수줍은 만남도 뒤로하고,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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