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 푸쿽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백수가 여행을 한다는것은, 

작은여행에서 찾는 마음





[실직은 가족이 사망한것과 스트레스 지수가 같다던데, 나는 가족이 아니라 제 자신이 사망한 느낌이예요] 

영화 Up In The Air에 이런 인터뷰를 하는 상기된 얼굴을 한 남자가 있었다


[아니요, 못합니다]라고 거절한번 하지않았을것같은

명령에 잘 복종하고 나쁘지않은 회사생활을 했을것 같은 그 남자는 

퇴사를 명령받는자리에서 저렇게 말했다


조금은 웃자고 과장되게, 조금은 마음을 담아서 농담조로 말해보자면

이곳에 서있는 세명은 정말 열심히 일했던 회사에서 스스로 걸어나왔으니 일종의 자살을 선택하는 정도의 스트레스인것인가.





| 과일가게에서 산 과일 50,000동어치- 2,500원 정도


입사동기 20명 가까이를 제치고 승진에 승진을 거듭하면서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던 동생은 관리자까지 달았지만 언제나 불평불만 많고 헛점이라도 생기면 물고뜯을 동기들 위에서 실력하나로 위태롭게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 나가떨어졌고,  반대로 부하직원들이나 타 팀원들까지도 고루고루 괜찮은 인맥을 만들던 오빠는 난데없이 애까지 딸린 유부녀의 사랑고백을 거절했다가 눈만 마주치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미저리같은 매달림과 괴롭힘에 퇴사했다


나역시 그들과 다를바없이 나를 인정해주고 같이 일해 행복해마지않던 회사에서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나왔지만(내 이야기는 아껴놓겠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기를 쓰면서 말하는 [진정한 나를 찾고싶었다]던가 [좋은회사보다 내 인생에 집중하고싶었다]같은  그런 이유는 아니였다. 어느정도 돌려서 궁극적으로 찾는 가치는 일맥상통할지도 모르겠지만 모두가 처음부터 내면에 묵히고 삭혀온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수 있는 '어른'은 없을것이다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고, 내 자리를 만들고 올라갈만큼 올라가서 애사심이 극에 달하고,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오고 대접받는지 스스로를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었기때문에 적어도 우리 세명은 다른 어떤 이유로도 퇴사하지 않기위해 버둥거렸다

고작 이런저런 이유때문에 내가 이곳을 떠난다는게 우스워서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버텼는데 결국은 버티지못했을 뿐이다


바보들같으니 :)





| 각종 채소와 야채를 사고 내가 지불한 금액


"세명이 시간이 맞아서 함께 여행을 했다"는 전제조건만 보면 참 팔자좋은 소리가 아닌가 싶지만

20대후반, 서른초반, 서른중반의 각자 수도권지역에서 자취를 하면서 제 생활비 제가 벌어먹고 살아야하는 인간셋이 비슷한 시기에 백수가 된것은 남들이 수박 겉핧듯 남의일상을 보고 부러워할만한 일은 분명 아니었다


매달 나갈 월세와 대출금을 생각해야하는 동생, 생활비와 빚이있는 오빠, 그리고 그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는 그나마 무난한 나의 통장잔고도 풀칠만 시도해도 바닥을 드러내기 때문에 한국보다 한달 생활비가 덜드는곳에서 '지출'이 아닌 '유지'를 하자고 말했지만 모두가 마음은 무거웠다






처음 며칠간은 바닷가앞의 나무집을 빌려서 눈이 뜨면 바닷가를 보는것이었다

휴양지에 나와서 아무 일정도 잡지 않았다가 하루종일 잠만자고 오후 해 질까 싶을무렵 일어나면 너무 허송세월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막상 해만 뜨면 눈이 저절로 떠졌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나와서 모래위 쿠션없는 썬배드에 걸터앉아 담배를 꺼내물고 계속 파도치는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상황이 낮설어서 [이럴줄 알았으면 차라리 번화한곳에 가서 일정을 빼곡하게 잡는게 나았으리라]하고 마냥 시간을 허비하는일에 모두가 익숙치가 않았다


그래도 그나마 어린 동생은 바로 홀가분해져서 바다에도 뛰어들고 이곳저곳을 쏘다녔는데

아무래도 기분이 업되는데에도 젊음이 필요한것인가, 며칠이 지나도 오빠는 여전히 말이없었다


다들 한달씩만이라도 쉬자고 합의해놓고도 헤드헌터에게 이미 이력서를 보내놓았는지 면접제의 전화앞에서 한참을 깍뜻하게 통화할때 빼고는 별다른 의욕조차 없어보였으니, 그의 베낭안에 수영복이나 운동화따위를 챙겨왔을리가 있나

애초에 물에 들어가지 않겠다, 산에 올라가거나 걷는것도 귀찮다, 난 아무것도 하고싶지않지만 그냥 생활비나 아끼겠다고 따라온것이다






바다앞의 숙소를 떠나고, 나름 괜찮다는 리조트에서의 날들도 지나쳤다

이제 이곳사람들에게 물어봐도 [거기가 어디여?]라고 물어볼만한 외곽깊숙히에 있는 숙소로 옮겨왔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뜨면 닭이 마당을 걸어다니고 

미관이라고는 전혀 고려되지않게 그냥 어쩌다 뿌리내린 나무들이 가득한 

시골집같은곳에서 비로서 오빠는 움직임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구한숙소는 커다란 나무 하나였는데, 나무위에 나무판자를 얹어 집을 지은 구조였다

엉성하게 설치된 계단을 밟고 1층에 올라서면 테라스겸 부엌이 있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을 통해 바닥에 달린 뚜껑(이라고 쓰고 문이라고 읽는다)을 열고 침실로 올라갈수 있었다







| 침실방을 뚫고 천장까지 치솟은 나무


나는 훌륭한 검색실력으로 대형사이트에서 결제하지않고 해당 숙소의 업주와 직접 계약해서 

3인이 하루에 2만원도 채 안되는 금액으로 계약을 했다


침대와 에어컨 쇼파 욕실등 기본적인 가구등은 빠짐없이 있는데다가 가전제품과 부엌이 딸려있으니 장을봐서 삼시세끼는 챙겨먹으면 되는것이고 큰 도로와도 멀리 떨어져있으니 개인의 시간을 갖기에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다만 침실로 올라가는 1층천장의 네모난 통로가 좁아서 살이통통한 내 동생이 들락날락할때 끼거나 살이 쓸리지는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동생은 생각보다 날씬했다






꼬꼬댁거리는 닭과 온갖 새들의 지저귐에 깨서 일어나는것이 좋았다

둥근 창문을 열면 조그마한 수영장에서 통통한 해달처럼 물위에 둥둥 떠다니면서 누워있는 동생과 

사우나에 앉아있는 아저씨같은 오빠가 물놀이를 하고있는것이 눈에 들어올때마다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두사람 모두 적당히 즐겁고 적당히 다시 활기있는것같아서 나도 행복해졌다


건너편 나무집에는 독일 노부부가 머물고있었는데 언제나 테라스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다

해외에서 저렴하고 한적한곳에 머물때면 어김없이 독일사람들을 반복적으로 만나다보니 그들의 취향도 익숙해져서, 사실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독일사람들을 만날수 있을것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빙고! 





 

노부부는 좀처럼 수영장을 쓰는일이 없었지만 내동생은 하루에 세번씩 꼭 수영장을 이용했다

아침먹고 점심먹기전까지 한번 / 점심먹고 저녁먹기 전까지 한번 / 저녁먹고 잠들기전까지 한번ㅡ

그냥 먹고자는시간 외에는 물속에 있었다


소나기처럼 굵은 빗방울이 아프게 내리는날에도 그녀는 수영장에서 나오지않았는데 

나는 침대에 엎드린채로 동그란 창문안에서 수영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동생이 없다는것을 깨닫고 두렵고 놀란마음에 나무집에서 내려나가보면 그녀는 물안경을 끼고 호흡을 참은채 수영장 바닥에 드러누워서 수영장 물 표면을 때리는 빗물을 감상하고있었다


물귀신처럼 바닥에 드러누워서 하늘에서 떨어져서 수영장물 윗부분을 후두둑 두드리는 빗물을 네시간 다섯시간 혼자서 보고있는 동생을 보면서 [나도 저건 생각못해봤는데]라고 부러워서 잽싸게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려다가 온전히 혼자만의 세상에서 뭔가를 즐기고있는 공간을 방해하지않으려고 나는 동그란 창문앞자리를 찜해놓고 그곳에서 내시간을 사용했다






그동안 오빠는 이곳저곳을 쏘다녔는데

시내에가서 와인을 골라오거나 샐러드 드레싱이나 과일, 라면등을 사오는등 

소꿉놀이같은 하루하루의 식사준비에 심취해있었다


[아무것도 하지않아도 괜찮다]고 말했던 나의 마음속 깊은 배려는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않았다


후추같은것이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좋을것같다고 생각하는 것들앞에서 

그는 바쁘게 움직이면서 하나하나 갖춰가는것에서 보람을 느꼈다


그가 활기를 되찾는 방법은 휴식이나 여유가 아니였구나

쉬지않고 계속 진행형이었어야할 사람에게 여행은 오히려 감옥같았을지도 모르겠다 

잔잔한 일상속에서 처리해야할 퀘스트가 생길때마다 그는 눈이 반짝거리고 생기를 찾았기에 우리의 식사는 날로 풍성해졌고 문제해결형 가장의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있는 오빠도 이곳이 썩 마음에 들고 유니크한 공간이라면서 만족스러워했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싸구려 와인을 까면서 그안에서도 좋은 와인을 찾았다고 그는 만족해한다

나는 남자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의 성과를 은근슬쩍 알아달라는것인지 그냥 하는소리인지 모르겠다


비위생적인것 같다고 마트가 아닌곳에서 산 고기에 손도대지않을것같던 동생은 

가장많은 고기를 목구멍으로 넘기고 숙소의 흰둥이 두마리에게도 육고기를 하사하면서 한껏 취해본다


이곳에서 머무는동안 모두가 행복했던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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