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한 사람, 식사의 의미
[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마주한 사람, 식사의 의미
상대가 모르게 보여주는 진심과 성격
식사시간에는 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상대에게 내보이는 자리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먹는 행위를 할 때 수면 다음으로 가장 편안해진 상대가 되고, 그만큼 경계나 조심성 없이 자신이 드러나는 자리기도 해서, 중요하고 큰 미팅을 식사나 술로 잡는 일이 다반사인 것은 우연이 아닐 수밖에 없다
언제나 입이 짧고, 먹는것에 큰 즐거움이 없는 나는 본의 아니게 식사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하게 된다
언제나 메인메뉴나 조금 더 선호할법한 음식들을 상대 앞으로 보내고 적당히 배만 채우면 되는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식사시간을 선호하지 않게 되었다
혼자 여행하다 보면 음식의 퀄리티가 낮아지고, 대충 간편한걸로 한 끼를 채우는 일이 빈번한데 동생인이 생길 때마다 적당히 이동반경 안의 평이 괜찮은 레스토랑을 미리 확인해 둔다
내가 모든 일정의 레스토랑들을 미리 알아봐 두었다는것을 알게 된 동행인은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더니 본인은 한 끼만 잘 먹으면 되는 사람이라고 첫날부터 어필하다가 어영부영 첫날 저녁도 거르게 되었다
둘째 날도 이래저래 적당히 배를 채우기만 한다는 느낌이라 즐긴다는 개념이 없는 식사를 하다가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직 나와 정말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모두가 먹는 건 괜찮다고 적당히 둘러대거나 자신의 말을 믿지만, 모두에게 먹는 일은 중요한 것이다
크게 호불호를 내보이지 않던 사람이지만 음식에 대한 만족은 표현한다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한입 얻어먹어볼까 고심하던 고양이에게 음식조각을 건네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또 몰랐던 그녀에 대해 알아간다
어쩌면 술보다 같이 밥을 먹는 시간 동안 상대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불필요한 말을 굳이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식사 때만큼은 편견 없이 긍정적으로 뭐든 받아들인 이후 몇 번의 반복되는 행위 이후에는 꼭 처음과 다른 냉정한 평가를 잘 흘리고, 잘 먹은 뒤에 꼭 만족과 감사를 표현하는 그녀를 보면서 남은 시간 동안의 식사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할지 알게 되었다
예의 갖춘 솔직함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는 이곳에 만족한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에도 나는 누군가가 가장 편안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다양한 감정의 순서를 보여줬던 곳으로 가족과 지인들을 데리고 함께한다
가능한 영역 안에서 상대에게 가장 적합할만한 메뉴를 추천하고 여러 종류의 음식이 나온 뒤의 사람들의 반응은 항상 제각각이다
쉽게 좋아하고 긍정적인 이는 긍정적인 마음을 숨기지 않고 잘 표출하고 마지막까지 잘 유지한다
경계심 많고 속을 드러내기 싫어하는 사람은 조용하고 묵묵한 듯 꼭 마지막까지 식사를 차분히 유지하다가 하루건 며칠이건 시간이 지난 뒤 본인이 내보인 만족의 에티튜드와 다른 변덕을 부린다
본인이 식사하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주변을 신경 쓰거나 눈치를 보는 사람과, 자신의 감정조절에 실패하고 인사도 한마디 말도 없이 식사자리에서 벗어나 사라져 버린 상대까지, 다채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나는 여러 가지 여운과 함께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적당히 사람들에게 인기 없이 남는 메뉴로 배를 채우면서 사람을 알아가고 돌보고 챙기는 것이 흥미로웠던 시간들이 점점 의미가 없어진다
내가 알아가는 만큼 즐겁고 쉬웠던 것들이 요즘엔 의미가 없어지는 중이다
나이를 먹어도 넓은 시야와 호기심을 유지하고 흥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일까
언제나처럼 순간순간 관계에 최선을 다하지만 미련도 흥미도 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