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른 / 스위스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베른의 한적한 오후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걷고 있나요


| 베른 케이블카


베른의 케이블카를 타고 도시전경을 감상할까 싶어 걸어나와 내리막길을 걷는데 조그마한 케이블카 하나가 지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케이블카는 스키 리프트나 놀이공원이나 높은산에 오르내릴때 윗쪽 줄에 연결되서 앞뒤 사방이 유리로 막혀있지 않게 몸이 드러난 형태를 생각했는데, 베른의 Marzilibahn funicular는 레일위를 이동하는 미니 트램같다. 항상 겁도많으면서, 정작 뭔가를 체험할때는 살짝 각오해야하더라도 바로 와닫는것을 좋아하는데, 유리창으로 막힌 케이블카앞에서 약간 실망한채 그냥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눈덮인 산이 항상 있는 스위스니까, 언제라도 좀더 멋진 풍경을 즐길수있을만한 케이블카를 탈수있을거란 생각에 크게 욕심내지 않았지만, 떠난 기차가 아쉬운 법이라고 걷다보니 승차한 상태에서 풍경을 봤어도 좋았겠다 싶을만큼 골목이 많고, 경사도 다양해서 땅을 반듯하게 다져놓고 모든 길을 직선으로 네모낳게만 뚫어놓은 길을 걷던 사람에게는 쉽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도 계속 빈칸으로 운행하는 케이블카를 보니, 현지인에게도 여행객에게도 큰 관심거리는 못되는것 같다




나이를 잊고 어울리기, 

게임 시작부터 승부를 생각하지 말고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기


| 외곽에 설치하지않고 사람이 걷는길 한가운데 그려진 체스판 위에 놓인 체스말


길을 걷다보니 아이들이 도로위 체스판에서 가위바위보를 하고있다. 가위바위보는 전세계 공용의 랜덤게임같은거지만 편뽑기에서 사실 승률이 갈리는건 어쩔수가 없다. 어릴때 항상 체스를 배워두지 못한게 아쉽다고 느끼는게 해외여행중엔 곳곳에 다트판만큼에나 많은 체스판이 보인다. 나이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체스를 즐기는데 그자리에 끼지는 못해도 판을 볼줄은 알고싶다. 고1때 바둑도 아닌, 오목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은뒤로 뭔가 이런 판만 보면 [내가말이야 왕년에]하고싶은 마음에 입이 간질거린다


나이차가 꽤 나는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섞여노는 모습이 재미있다. 내가 남색티를 입고있는 아이의 나이였다면 저런 세 꼬맹이들은 상대도 해주지않았을텐데. 명절에 가족모임을 갖게 되더라도 연령대별로 어울리는 문화가 익숙한 나는 분명 [정신연령이 안맞아 재미가없다]고 혼자 스마트폰이나 쥐고있었을것이고, 어린애들끼리 뛰어다니고 꺅꺅거리면서 집을 시끄럽게했을텐데


정정당당한 편을 나누기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편을 나눈뒤 말을 옮길때마다 신중한 아이들은 조금 더 큰 아이의 조언을 얻는다. [이럴거면 편을 왜 나눴어?] 이 체스판은 어쩌면 팀이 다른의미로 세가지다. 1:3이기도 하고 2:2기도 하고 0:4로 어쩌면 팀이 없을지도 모른다. 형식상 나눴을 뿐 같이 어울리고 노는데 중점을 두지 이기기 위해 고뇌하지는 않는다




여행하면서 가장 중요한것


| 말을 어떻게 옮길것인가에 대한 고민


해외여행을 꾸준히 하다보니 여행하면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것은 여행전 가방싸기, 짐챙기기, 여행지의 전압비교하기, 날씨체크하기등의 체크리스트와 캐리어 안을 채워넣을 준비물이 아니라 자전거배우기, 운전면허취득하기, 수영하기, 체스나 가벼운 게임등은 익히기 인것같다.


물론 저 위의 항목을 나는 하나도 갖추지못해서 좋은 도로를 보면 내차를 내가 운전하면서 몰고가고싶은데 불가능할때마다 한숨을 쉬고 보드를 샀다. 잘 포장된 도로를 보드를 타고 돌아다니는것은 꽤 좋다. 좋은 수영장과 해변을 만나면 마음껏 수영하고 싶다. 내게는 비키니가 3개나 있는데, 수영강습을 들으려면 수영교복같은 원피스형 블랙 수영복을 왠지 하나더 구매해야 할 것 같고, 수영복이 있는데 남들눈을 의식해서 남들과 같은것을 사야한다는 이런 사소한일들이 번거롭고 살짝 짜증나지만 손가락질 받는 상황을 만들고싶지않아 수영배우기를 차일피일 미루고있다


독일에서는 1부터 20까지 덧셈을 스스로 도움없이 해내는 과정을 2년 내내 오직 그것만을 배우고, 자기 스스로 하는법을 배우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할만큼 수업의 진도가 느리지만 자전거면허취득과 수영이 정규교과로 편성되어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과목이라고 했다


여지껏 자전거도, 수영도 어쩌면 생사와 여가에 해당하는 기초적인 과정을 생략한 나는 여행지에서 항상 아쉽다. 내 인생을 조금더 윤택하게 해줄 시간들로 여행을 선택하면서 정작 즐기려고 하다보면 그것은 여행이 아닌 도전이 되곤했다. 그 쉬운 스노쿨링도 겁을먹고 휴양지에서 뒤로 물러나 선베드에 앉아있었고 패러글라이딩도 ATV도 윈드서핑도 웨이크보드도 다, 어쩌면 즐기러 가서 배움으로 하루를 보내고 [체험]정도를 하고 돌아오는 일정에서 나는 즐긴것이 아니라 배우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성취감을 맛봤을 뿐이지 않을까




갖지못한 구두


| 베른 한 상점의 쇼윈도


걷다보니 한 가게 앞의 쇼윈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행하면서 사소한 기념품하나 사지않는 나는 남들눈에 불필요한것과 남들눈에 유치한 소품같은 생필품을 사는 버릇이 있다. 오늘은 불량식품과자를 붙여놓은것 같은 구두가 갖고싶었다. 종종 소유욕이 생길때는 바로 구매로 연결되곤 하는데, 굳게 잠긴 가게문은 나를 속상하게한다


저 구두를 사서 신고싶은데, 내 마음은 떠나질 못한다. 사실 지금 신고있는 운동화도 걸을때마다 불빛이 반짝거리는데 덕분에 여행중에 소매치기 한번을 당하지않았다. 걸을때마다 골목을 번쩍번쩍하게 하는 내 발걸음때문에 아주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고, 그래서 뻔히 많은사람들이 보고있는데 누가 옆에와서 지갑을 훔쳐간다던가 하는일은 생길수가 없었다. 특히 밤거리를 걸을때 아주 유용하다


가끔 사람들이 다가와서 [JUMP!] [DANCE!]등을 요구하곤 하는데 그건 완전히 내 신발에서 나는 불빛을 보기위해서다. 본인이 내앞에서 뜀박질을 해대면서 내가 점프하길 바라는 사람들을 볼때마다 깔깔거리면서 몇번 뛰어주고 오곤 하는데 아마도 이 구두는 그정도의 재미적인 요소에서는 가치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갖고싶다. 눈에 들어온것은 기필코 사고마는데, 이렇게 스위스에 두고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질않는다


플라스틱 조각들이겠지만, 내눈에는 비타민이나 영양제같다. 힘들때마다 잠깐 쭈그리고 앉아서 구두에 붙어있는 알파벳 약을 하나씩 떼어먹으면 힘이나서 다시 걸을것같아, 아 갖고싶다




길에서 만나는 인연, 낮선사람에게 쓰다듬어달라고 다가오는 용기


| 스트레인저와의 만남


걷다 잠시 길가의 벤치에 앉아있는데 낮선 고양이가 다가왔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내가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는 길에서 고양이를 마주치면 서로 경계하고 최대한 멀리 걸어다니면서 거리를 유지했다가, 고양이를 키우고 난 뒤로부터는 고양이가 내게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난 뒤, 고양이는 마치 길에서 만난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처럼 다가와서 뺨을 내밀기도 하고 몸을 비비면서 쓰다듬을 요구하기도 한다. 어릴땐 할머니가 고양이는 요물이고 무서운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생길만큼 하셨었는데 그래서 20년 가까이 나는 괜히 고양이를 무서워하곤했다


지금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보다 동물이 더 좋다. 낮선 사람을 만나면 가벼운 대화에도 친절한 의도나 호의에도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티안내지않으면서 경계해야하지만, 낮선 동물을 만나서 그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는 없기때문일까. 아는체를 하고싶어서 다가와 약간의 스킨쉽을 요구하긴 하지만 대부분 짧은 시간동안 서로에게 무리해서 기대하는것 없이 시간을 나누는것이 행복하다. 가끔은 친해진 고양이와 같이 차한잔도 마시고 싶고, 서로 안부정도는 묻는 사이로 남고싶지만 내가 그렇게 굴기 시작하면 분명 고양이는 내가 외국인을 경계하듯 나를 경계하기 시작할것이다




여행의 목적, 내딛는 발걸음의 무게


골목을 걷는데 무수히 많은 집들이 보인다. 저기 어딘가에 내집한채 있으면 얼마나좋을까. 크기는 상관없고 그냥 느듯하게 산책하고 느듯하게 먹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싶다. 스위스에 자살관광 가는사람에 대한 기사를 봤는데 이곳 여행자들이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지는 않을것이다. 6천유로(천만원가량)를 자살비용으로 내고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사람다운 삶을 마감하기 위해 스스로 assisted suici de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가 어떤 마음으로 다가올까.


더욱이 외국인 신분으로 조력자살을 하기위해서 1년넘게 스위스에서 강제 체류하면서 마주하는 푸른 잔디와 언제나 눈덮인 산, 청록색 강물, 무수히 심어놓은 꽃들을 즐기기에도 버거운 시간이겠지. 자살약인 펜토바르비달을 먹고 고통없이 잠을 자듯 죽을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사실 벅찬것같다. 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병을 앓고 있다는 의사의 진단서와 자살조력단체의 요청을 기다리면서 연명하는것은 혹독한 고문이다. 견디기 힘든 고통속에서 죽임이 지연되는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환자가 외롭지않게 본인의 의사대로 삶을 결정할 권리를 주는 나라는 참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람이 원하는것은 무엇일까. 몸을 뉘일수 있는 공간과, 따듯한 식사, 평화로운 일상과 인간다운 삶.

깊이 들어간다면 이곳역시 하루하루 버티기일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욕심이라고 부를수도 없을만큼 소소한것들을 간절히 원하고 사는 삶이 슬퍼서 가끔은 사람다운 복지가 부럽고, 오늘은 그저 눈부시게 빛나는 풍경을 짧게 소유하면서 그저 걷고있다






20151109 / 이 포스팅은 포털사이트 다음 오늘의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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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9 / 이 포스팅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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