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른 / 스위스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지하상점

지하계단을 향해 내려가면 주인의 취향을 만난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시골보다 도시를 여행할때 외출이 더 잦은편이다. 집에돌아가서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보면 한적한 시골에서 찍은 사진의 양을 도시풍경이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시골풍경을 사랑하지만, 인근에 여러가지들이 있다는것은 사람을 자꾸 현관앞으로 나서게한다


신발가게가 여기있구나, 식료품은 어디서 사야하는걸까등을 생각하면서 미리 주변의 상가들을 봐뒀어야했는데 태평한 시간들을 보내면서 마냥 즐거워만 했더니 상점에 대한 정보가없었다. 그래도 저녁때 호텔방에서 마실 캔맥주 서너캔은 사와야 지는 노을 앞에서 마음이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게 아니겠는가




동글동글 말려있는 가파른 골목길


달마시안을 데리고 산책하는 몸매좋은 여자를 지나치고, 야외 레스토랑에서 차를마시면서 햇살아래서 여유를 부리는 사람들을 지나쳐 대로변이 아닌 골목길을 걷는다. 양옆으로 5~6층 가까운 건물들이 열맞춰 서있는 골목길 1층까지는 빛이 잘 닿지않아 그늘지고 쌀쌀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대로변으로 다니는걸까 


유럽은 창 테라스에 꽃나무와 다양한 화분을 많이 키워서 외관을 예쁘게하던데, 베른은 그렇게까지 집을 꾸미면서 살지는 않는것같다. 화분없는 휑한 테라스를 섭섭해하면서 누워있는 달팽이 껍질위를 걷듯 동그랗게 말린 길을 향해 내리걸었다


이길을 아침마다 조깅하는 사람이 없을것이라는걸 확신하겠다. 혹시 어쩌면 헐리우드 액션영화에서 차를 정신없이 몰고 커브를 꺾는 촬영적인 요소로 사용하는게 조깅으로 이용하는 쪽보다 바람직한 방향제시가 아닐까 싶다




참새는 방앗간을 가장 조심해야한다


와인가게를 찾았는데, 쇼윈도앞에서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괜히 들어갔다가 지갑의 지폐를 탈탈 털어내고 나올수는 없었다. [캔맥주를 사러 나왔으니 나는 캔맥주면 된다]암기하듯 다짐하듯 지나쳐야했다. 


집에 와인을 항상 사두는 버릇이 있어서, 와인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못했는데 오늘따라 집에서 마시던 술이 그립다. 한번 뚜껑을 열면 맛이 없어지는 맥주나 소주에 비해 코스트코의 쇼핑 한번으로 오래 큰 병을 두고 마실수있어서 쟁여놓는 버릇이 들어있었다. 오빠가 좋아하는 페퍼잭치즈 길다란 한 덩어리를 사면 간단하게 술안주를 별도로 만들지 않아도 이 두가지만 가지고도 몇달을 마실수있었다


스위스까지 와서 집에있는 와인과 치즈를 그리워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게 가난하면서도 가난하지 않다. 꾸준히 술을 마시면서도 술맛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적당히 흘러가는 시간과 경직되는것들이 풀어지는게 아직까지 술을 사랑하는 이유다. 내가 저 가게안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고가는 아니더라도 내손에 와인 두병은 들고 나오면서 해맑게 웃고있을것 같아서 두려워졌다. 빨리 이곳을 떠나야했다




책과 먼지는 친구다


걷다보니 책방이있다. 빛바랜 책들만 있을것같은 허름한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DP라고는 전혀 모를것같은 돋보기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주인으로 있을것같은 느낌. 구석에서 좋은 책을 찾아도 먼지를 탈탈 털어내다가 몇번 재채기를 해야할것같다.


연금술사라는 책을 보다보면, 그릇가게에서 접시를 반짝반짝하게 닦아내면서 주인공이 여행경비를 벌기전까지 일년가까이 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잠시나마 이 헌책방 앞에 서서 그런 상상을 해보았지만, 짧고 처참한 결과를 나는 이미 알고있었다. 대학시절 도서관 사서 아르바이트를 두어달 하다가, 책에 붙어있는 집먼지 알러지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혹사당했던 괴로운 기억이 내 상상의 나래를 미처 펴기도 전에 잘라버렸다. 상상은 적나라한 과거가 없어야만 가능하다


마크툽. 정말 내 길이 이미 쓰여져있을까. 나는 아직 사막을 걸어보지도 않았고, 모든것을 다 두고 떠날만큼 간절한것을 찾은적이 없다. 




주인의 성격이 드러나는 가게 앞 거리


| 거리길에 늘어놓은 책 매대 풍경


우리나라 길거리에서 뭔가를 판매하더라도 대충 박스에 포개어놓지는 않는것같은데 참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아놓았다. 낡은 장서를 햇빛에 말리기위해 내놓은 것이 아니고 분명이 판매하기 위해 아케이드 옆에 진열해놓은것인데 [진열해놓았다] 라는 표현이 애매하다


베스트셀러, 인문, 교양, 소설, 미술같은 안내팻말도 없고 필요한 사람이 눈치껏 찾아가져가야하는 시스템이다. 하다못해 매대라도 만들고 조금이라도 정리를 잘해놓으면 매출이 오를것같은데, 꾸밈없이 방치해놓은듯한 상점들을 보면서 시골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난 아직도 소설속의 아르바이트생 역활에 미련이 남은것일까. 


저 박스들 사이에 동화책이 있는지 궁금했다. 헌책방에 가면 항상 동화책 서너권을 사오곤 했는데, 여긴 헌책방이 아니지만 헌책방 느낌이 난다. 동화책의 장점은 커다란 그림과 얼마 되지않는 몇줄의 글이고 까막눈이어도 볼수있고 선물하거나 내 추억을 뭍혀 들고오기 좋다. 그런 이유들로 책방앞을 지날때면 항상 방앗간 근처를 지나가는 참새처럼 기웃거리면서 손으로 책을 뒤적거리곤 하는데 이 가게는 주로 소설을 취급한다




지하 상점으로 통하는 길, 벙커 문 


지하로 연결되는 벙커같은 문을 열다만 것처럼 대충 걸쳐 열어두고 영업을 한다. 베른은 1~2층이 주로 레스토랑이나 상가이고 지하1층은 99% 상가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기때문에 상점으로서 매력이 없을것같은데 막상 보면 그렇지도 않다. 근시안적으로 걷는 나는 멀리보기보다 눈높이에 맞는 1층과, 땅바닥을 보면서 걷기때문에 지하상점들이 반복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자꾸만 지하로 뚫려있는 구멍, 아래로 열려있는 계단은 지하던전같고 자꾸만 내려가보고싶게한다. 코딱지만한 베너를 간판으로 붙여놓고 장사를 하는 가게들, 막상 계단아래로 내려가면 행거에 걸린 수많은 옷들과 잘 정리된 패션 악세사리들을 보면서 홍대가게를 보는것같은 느낌이 든다.


나만 아는 센스있는 아이템이 많이 감춰져있는 샵에 들어온 느낌처럼 지하가게의 매력은 상상이상이다. 무심하게 지나쳐가고 싶지만 땅에 뚫려있는 구멍을 보지않고 지나칠수는 없다. 




지하세계의 장르는 다양하다


데이먼과 헤런은 누구인가. 결혼한 부부가 남여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는것일까. 이발소 간판 양옆으로 스위스 국기와 베른의 상징 곰마크를 넣은것도 참 올드하다. 지하가게의 종류는 옷가게와 잡화점을 넘어 미용실까지 있다. 간판의 컨셉과 타이포의 컬러를 생각하면 머리가 눈물나는 스타일로 바뀌어있을까봐 쉽사리 계단아래로 내려가기는 어려울것같다. 


주로 한국 노래방이 위치해있을 지하와 다르게 베른의 지하는 다양한 상업적인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 현수막 1/10사이즈의 조그마한 스티커형 간판만을 걸어놓고도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는 시선때문인지 꾸준한 손님을 얻어낸다. 현란한 네온사인없이도 춤추는 바람풍선과 빵빵하게 틀어놓은 음악없이도, 기념사은품을 내걸고 이벤트를 하지않아도, 각종 전단지와 명함사이즈의 홍보물 없이도 베른의 상점들은 깔끔하게 목적을 달성낸다


너도나도 SNS마케팅을 하고, 블로거를 통해 광고를 하고, 특정 카드를 쓰면 몇%를 더 DC해주는 혜택인듯 혜택아닌 상술도 없고 가짜 상업정보가 인터넷을 뒤덮지도 않는다. 도로는 항상 청결하고 이집저집에서 섞여나오는 소음같은 가요없이 조용한 풍경만이 있을 뿐이다




삼청동과 인사동의 사이, 베른 지하상점


인천 부평에도 지하상가가 있다. 형태는 다르지만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는 [세계에서 가장 긴 쇼핑지하상가]는 정말 옷을사는데 있어서만큼은 쇼핑의 천국이다. 상당히 많은 인파도 놀랍고 저렴한 가격대의 옷들은 여러모로 사람을 혹하게 하지만 주 소요층이 10~30대 미만의 젊은층이다. 그만큼 유행이 빠르고 민감하게 바뀌는 시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베른의 지하상점은 완전 다른 느낌이다


유행타지 않을 품목들을 단정하게 정리해놓고 시즌별 DP가 바뀌기는 커녕 오직 가게주인의 취향만이 있을것 같은 인테리어는 어쩌면 부평보다 인사동의 공방거리와 가로수길의 중간쯤을 닮은 느낌이다. 


낡은 회색건물의 철로된 둔탁한 문이 닫혀있는 늦은시간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날이 조금 밝았다고 일제히 하늘을 향해 문을 열어두고 영업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다. 벌집에 가득 차있는 꿀같기도 하고 문사이로 밝게 빛나는 조명은 자꾸만 계단아래로 사람을 유인한다. 


윗쪽에 서서는 가게안을 볼수없어서, 자꾸만 호기심을 만들어내는 지하가게가 매력적이다





맥주를 사려다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빈손으로 걸어다니고있는 오늘, 길을 걸었을 뿐인데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무수히 많은 가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언제나 내 머릿속의 유럽은 멋스럽지않지만 멋스럽다. 그저 실용적이고 낡았지만 무리하게 변화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 게으름과 실용성이 환경과 문화를 만나 타 세계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 멋스럽게 보이는 것이고, 과거를 잘 쥐고있을 뿐이다.


마트가 어디있는지 구글링이라도 하고 나올걸, 이런 달팽이껍질같은 도시를 무턱대고 걷다보면 시간을 도난당하고 만다. 이렇게 계속 걷다보면 곰공원까지 가서 베른의 마스코트라는 곰까지 만나고 올것같다. coop city 마트를 향해 갔어야 했는데, 아무래도 다음번에 나올때는 스쿠터바이크를 빌려타고 나와야겠다


베른이 워낙 작다지만, 걸어도 걸어도 새로운것을 만나고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리니까










20151117 / 이 포스팅은 포털사이트 다음 오늘의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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