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베트남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알아차리려는자, 숨키려는자

나도모르게 되는 다이어트







혹시나 인적이 드물고 차가 다니지 않는 외지에서 노인이 쓰러지기라도 하는날까지 대비하려고 

여행 몇달전부터 한사람을 엎고다닐 체력까지 길러가면서 이 여행을 준비했고, 

각종 의약품이며 당신몸에 편할 잡다한 생필품들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아닌 아버지를 보조하기 위한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모든것이 다 아버지를 위한 것들일 뿐, 

갈아입을옷 한벌과 속옷이 내 짐의 전부였음에도 내 배낭은 항상 빼곡했다 


썬크림정도는 챙겨가지고 다니던 그 자리에 아버지를 위한 알러지연고와 해충기피제들등이 자리잡았고

내 슬리퍼와 작은담요조차도 자리를 뺏기고 배낭밖에 묶어서 가지고 다녀야할 만큼 내 짐은 모든 자리에서 밀려났거나 애초에 가방안으로 들어갈 자격조차 박탈당했다


처음으로 연로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서 그렇게 오랜시간 준비를 했는데

그럼에도 부족하고 부족했나보다





모든것을 다 당신에게 맞추고 모든 좋은것들을 양보하고 배려했음에도 몇일내내 주름진 미간과 언짢음이 가득한데

[아버지 뭔가 불편하세요? 몸이 안좋으신건가요?] 

하고 물어도 목석처럼 입이 없어진 어른을 상대하는것이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것이 실례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살아온 분이니까,


나는 그를 이해하지만 몇일내내 화가나있는 얼굴을 마주하면서 틀린 답안지를 교체해서 선생님앞에 가져다 바치듯이

[목마르신가요?] [담배 떨어지셨나요?] [피곤하세요?]

'알아맞춰보기'를 하다보니 내 감정에서 금이가기 시작한다







차라리 시원하게 [이거싫어] [저거싫어]를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불편하신게 있으면 가감없이 이야기해주세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좋은 여행을 할수있어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상냥하게 그에게 말을 건네고 나면


[괜찮아. 불편한거 없어]

그 역시도 불편하고 언짢은 모든것들을 꾹꾹 눌러가면서 내게 준 회답은 내 내장을 찢어발겨놓는다


[아버지 이건 생선조림인것같은데 어때요? 저녁을 이걸로 먹어볼까요?]

[아니 괜찮아. 필요없어. 필요없어.]






자식이 눈도 거의 보이지 않고, 혼자 거동이 어려워진 아비와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던 마음을

당신은 아마 정확하게 알고있을것이다


짐이될것같아서 한사코 마다하고 또 마다했지만 그래도 자식과 함께, 

혹시라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니까 결국 큰 마음먹고 내딛었지만, 

모든것이 불편하고 낮설고, 번거롭고 벅찼다


좋은마음으로 딸들과 좋은 여행을 하고싶은 그는 최대한 힘듦을 참는다

애도 아니고, 이거 너무 힘들다, 저거 너무 괴롭다 표현하는것이 구질구질하고 추잡스럽다고 생각한다

여행에 돈을 보태고싶었지만, 그마저도 한사코 거절해서 빈몸으로 따라온것이 줄곧 마음에 걸린다고 몇차례나 이야기했음에도 괜찮다고 신경쓰지말라는데, 오히려 마음이 무겁다


[아버지, 맨밥드시는것보다는 쌀국수 사서 국물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그토록 말을 아끼고 아꼈지만 저놈의 쌀국수는 도저히 못먹겠다싶었는지


[아이고, 저거 먹으면 또 하루종일 뱃속에서...]

그는 말하고 말았다.

그는 [아차..]싶어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3시세끼 쌀밥과 한식에 가까운 식단이 가능한 식당으로만 갔기때문에, 식사때문일거라고는 짐작조차 하지못했다

소화가 안되서 죽을것같다던가, 하루종일 더부륵해서 괴롭다는 것을 말하는것이 뭐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몇일만에 인상가득 화가난 그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내장이 갈리던 나는 드디어 나온 한마디가 그렇게 반갑다

옷은 단 두벌만 챙겨왔는데, 불과 몇일만에 바지허리에 주먹이 두개가 들어갈만큼 나는 살이 빠져있었다

밥먹을때도 그가 잘 먹는지 확인하면서 먹고, 잠은 잘 들었는지 확인하고, 이동할때도 그의 컨디션을 보면서 계속 그를 살펴보고 눈치보고 맞춰보기만 했는데도 엄청난 효과다



[아이, 진작좀 이야기해주시지. 제가 그럼 문제를 해결할수 있잖아요. 한국식 컵라면이라도 사면 좀 낫겠죠?]

도저히 쌀국수만은 못먹겠다고 생각했는지, 무심결에 튀어나온 괴로움의 한마디에, 나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눈이 잘 보이지않는 아버지는, 마트에 와서도 베트남에서 한국라면을 살수있을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는지 [한국라면] 한마디에 몇일내내 구겨진 미간이 깨끗하게 펴지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기서 한국 라면을 살수있어?]

[그럼요ㅡ.]







그가 향신료와 기름기 넘치는 국물로 괴로워한다는것을 알고 고추와 마늘을 샀다

당신을 위한 7개의 컵라면과 초밥과 볶음밥, 그리고 주변 어르신들한테 들었는지 

[노니를 사가야된다]고 여행전부터 그가 이야기했던 노니를 드디어 샀다


깔끔한 과일두팩과, 술없이 못사는 그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도수높은 주류두병,

입이 심심할때마다 그의 입속으로 들어갈 견과류와 건과일 몇개를 사고나니 얼마만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모르겠다






Load More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