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왜 자꾸 망설이는 거야
대단치 않은것들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사람들
[과일 사도 돼요?]
그녀는 꼭 허락을 구한다
나라면 [우리 과일 먹을래요?]라고 말했을 텐데, 공동 경비로 같이 여행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게 맞는 건가
마트 앞에서 과일향이 너무 좋았다면서 그녀가 허락을 얻고 산 파인애플과 용과는 숙소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자마자 앉지도 않고 서서 다 막으려던 걸 앉아서 먹으라고 테이블로 끌고 갔던 것이 기억났다
[저 과일 좋아하거든요]
그녀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딱 두 번 사용했다
달리는 툭툭 안에서였지만, 노점 과일가게가 보이자마자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고 기사에게 바로 행선지를 추가했다
[저기 들려서 과일 좀 사고 싶어]
언제나처럼 나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툭툭기사는 과감하게 유턴을 시도하고 과일가게 앞에 내려주었다
내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선택과 갑작스러운 노선변경에도, 도로교통법 같은 것은 깔끔하게 무시해 버린 툭툭기사에게도 꽤나 놀란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내리더니 과일을 만지작 거리면서 묻는다
[얼마만큼?]
나는 끝도 없이 담을 마음으로 빠른 손으로 과일을 계속 봉지에 집어넣고 흡족하게 다시 차에 올라탄다
그녀가 어느샌가 빌려온 칼과 접시 위에 그녀가 좋아한다던 것을 수북이 올려놓는다
나쁘지도 않은 것들 앞에서 굳이 주저하는 모양새가 귀엽고, 아쉽다
나라면 한 개 먹고 말 과일을 그녀는 야무지게도 한참을 먹는다
좋아하는 것을 좀 더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망설이지 않고 최대한 빵빵해진 두 볼과 야무지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러 이곳에 온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