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 베트남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크레페와 돼지 뒷다리

내마음대로 해도 되는 사람과의 식사가 즐거운 이유







그녀는 모르는것도 참 많다

처음보는것도 많고 안먹어본것도, 

경험해보지 않은것도 참 많다


언제나처럼 착하고 소중하기만 한 그녀가 [몰라]해맑게 하고 대답할때마다 어쩐지 귀엽다




사실, 쉬지않고 일만 하다보면 바보가 된다


집과 회사만을 반복하다보면 접하는 뉴스도 한계가 있고

피로에 절어서 살다가 어쩌다 한번식 나가서 먹는 음식에도 한계가 있고

좋은곳에 다녀왔다면서 보여주는 사진도 코웃음을 칠 정도의 것들 뿐일수밖에.


그렇게 청춘을 다 써가면서 다닌 회사를 퇴사할때쯤 몇푼 되지않는 통장잔고를 보면서

얼마만에 찾아왔는지도 모를 여유를 즐기기에도 벅찰 시간속에서

몰아치는 공허감과 상실감과, 이유없는 조급함을 


나 역시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나는 그녀가 원하던 크레페 카페를 들어본적도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스페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육포는 좋아해도 하몽은 뭔지 모른다니까?]

그녀는 여전히 크레페가 먹고싶은것 같지만

어차피 잘 따라온다


자리에 앉자마자 크리미널마인드의 페넬로페와 싱크로율이 100%인 가게 사장은

밝고 경쾌하고 사랑스러운기운을 이곳저곳 풍기고 다니면서

통통한 몸매에 독특한 옷차림과 특이한 스타일로 친구를 만난듯이 우리를 향해 재잘거리기 시작한다


디즈니의 공주는 사실 저런 캐릭터여야한다


 




먼저나온 상그리아에 정신이 팔린 동생은 더이상 [크레페..] 라고 주절거리지 않았다

내앞에 한잔, 본인앞에 한잔.


같은 상그리아가 나와있는데도 내앞의 상그리아잔을 잡아당기더니

내 상그리아를 사진찍기 시작한다


[언니거 상그리아가 더 이뻐!]

[똑같아!]


나는 당연하고 가볍게 습관에 가까운 칼처럼 그녀의 말을 자르고도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간다

잠깐 내 상그리아와 그녀의 상그리아 잔을 바꿔줄까 생각했지만

정말 똑같은 상그리아라서 그만뒀다






바 앞쪽의 쉐프가 하몽을 고정하고 얇게 포를 뜨자마자 그녀는 쪼르르 쫒아가더니

열심히 눈으로 쫒고, 사진촬영을 허락받은뒤로 뒷다리 사진만 몇십장을 찍고도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와.. 나 이런거 처음봐 언니]


그녀랑 같이 여행을 하는 즐거움이 이런게 아닐까


겹겹이 예쁘게 쌓아놓은 크레페 사진에 취해서 주둥이가 댓발 나왔던 이는 사라졌다

커다란 돼지 뒷다리 사진에 일말의 흥미도 없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나는 크레페..]라고 종알거리던 사람은 돼지 뒷다리 사진을 주구장창 찍고있다






어차피 뭘 코앞에 가져다 대도 만족할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경험하지 못한것들을 내가 보여줄때의 흐뭇함은

온갖 여행의 모든 만족도를 뛰어넘는다


[아.. 맛있어]

목소리를 낮춰서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대사인데 목소리를 낮춰 말하고는


쓱쓱 집어먹으면 될것을, 몰래 몰래 티안나게 먹고 감쪽같이 누군가에게 가져다 줘야할 사람처럼

조심조심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집어먹는걸 보고있으니 헛웃음이 터진다


[아 왜이래! 그냥먹어!]






내 입맛에 별로인것들도 그녀는 언제나 맛있게 먹고

내눈에 별로인것들도 그녀는 언제나 만족스럽게 소비한다


최대한 모양을 망가트리지 않고 먹으려는 조심스러움이 사랑스럽다


동생이 몇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하곤 할만큼

나는 동생에 대한 만족도만 높을 뿐,

어디에서 뭘 먹든 그저 그럴 뿐 이지만


그녀와 같이 식사를 할때는 신중하게 메뉴를 고른다







내가 아직 젊고, 동생이 아직 어려서 기회가 많은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아빠와의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자명하게 떠올랐다


빵빵한 두볼과 조그마한 주둥이가 쉴새없이 움직이는것을 보면서

가족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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