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따듯한 올리브, 파란색 그라데이션 

같은 색이 아니라도 좋아

 

 

 

나랑 해외여행까지 오게될줄은 정말 생각도 못했다고, 우리 만난지가 1년도 채 되지 않는다고 그녀는 여러번 말했다

사람이 뭔가를 주는데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그냥 주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했었다고도 종종 말했다

그리고, 같이 너무 오래 붙어있다보면 피곤해지거나 컨디션이 떨어졌을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본인의 모습이 나와버릴까봐 그게 스스로 싫다고 여러번 내게 속마음을 드러내곤 했다

 

나는, 그녀를 작년 6월 초였을까..  발레수업에서 만났다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처음 개설한 수업이었기 때문에 속칭 고인물이라고 할만한 사람도 없었고 차츰 친해지기 전까지 모두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서먹하고 어색하게 매일 수업 시작을 기다릴 동안

매번 단 한명만 사람들 무리에서 완전히 멀리 떨어져서 친해질 생각도 교류할 마음도 없이 매번 인사만 꾸벅 하고 사라지던 여자였다

 

보이쉬한 컷트 헤어에 꾸벅 인사하는 그녀의 제스춰에는 신기하게도 매번 '예의'는 있었지만 '대충'의 형식을 띄고있어서 세상과 약속된 형식도 지키고 내 할도리는 하겠지만 시덥잖은 관계까지는 필요하지 않아하는 느낌이 매번 반복되자, 나는 그녀에게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날, 백조의 호수 바리아시옹 안무 한 부분을 배울때였나

4명이서 손을 교차로 맞잡아야 하는데, 그녀가 몇초를 주춤거리더니 파란 그라데이션이 있는 손을 내게 멈칫한 마음을 숨기고 건넸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녀의 손을 맞잡고 그날의 수업을 정신없이 습득하기에 바빴다

그녀는 그 뒤로도 매번 사람들과 떨어져서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언제나 처럼 모두와 깔깔거렸고 그녀와도 깔깔거리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녀는 매번 예의있게 솔직하지만 관계나 길어지는 시간에서 부담을 느껴서 간간히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했다

 

내가 젤리 한개를 건네면 그녀는 다음날 다른 무언가로 반드시 갚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두서없이 종알거리면 가만히 잘 듣고있던 그녀는 굳이 숨기는 것도 없고 굳이 먼저 떠드는 법도 없었다

항상 진심이 아닌 말을 하는 법이 없었고 신중하고 섬세한 조심스러운 성격에도 자신을 포장하려고 하거나 상대의 호의를 얻을 수 있게 아주 조금이라도 수식어를 붙이는 법이 없었다

 

종종에서 점점, 그녀가 먼저 나를 보고 내게 다가오는 일이 잦아질 때 즈음, 내가 좋아했던 발레 선생님이 그만뒀고 나도 두서번 더 나가다가 발레를 그만두었다

언제나 처럼 적당히 그자리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새로운 환경이 시작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기존 사람들과 흐지부지 인연이 종결될 줄 알았는데, 그녀는 발레를 그만둔 이후로도 몇번이고 내 동네에 찾아왔고 그녀 덕분에 우리는 인연이 지속되었다

 

 

 

캐주얼한 관계를 선호하는 내가, 그녀를 만나면 종알종알 미처 남들에게 하지 못한 부정적인 마음속 이야기까지 꺼내놓는 일이 잦아질 때 즈음, 우리 관계에서 매번 조심하는것은 그녀지만 정말 조심해야할 사람은 서스럼없는 나라는것을 몇번이나 인식했지만 그럼에도 관계에서 걱정과 노파심을 안고있는것은 내가 아니고 그녀였다

 

이미 커피숍에서 자릿세 대신 마시지도않는 커피를 주문하는 나를 알고 자신이 마실 커피를 두잔 시키고 그녀보다 한가한 내 일정에 맞춰서 매번 방문하는 그녀는 본인이 마음속에 있는 그늘이 내게 드러나는게 싫다고, 내가 알게되는것보다 그 이후의 자신이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면서 매번 우울해지거나 검은 그림자가 나올까봐 매번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내가 갑자기 제안한 여행에 선뜻 응해서 20년만의 해외여행이라고 걱정하면서 주섬주섬 또 두려운 마음을 털어놓고, 혼자 또 뭔가 다잡더니 결국 나란히 앉은 그녀를 닮은 것 같은 단정하고 소박하지만 매일매일 어마어마하게 깔끔하게 유지되고있는 청결한 숙소의 침대에서 오늘도 상황이 이렇다거나 속상하다던가 하는 감정이나 설명의 수식어 하나 없이 그녀는 담담하게 솔직하다

 

 

 

여행오기전 회사분이 잘 다녀오라고 10만원을 주셨는데, 그대로 어머니께 드렸다 우리집이 그렇다-  고.

공동 경비로 사용될 예산만큼만 환전해왔다고 이야기 하는 그녀가, 언제나처럼 나는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할때마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실망하게 될까봐 걱정하고 조심하는게 참 귀엽고 불필요한 걱정이 안쓰럽다

그녀가 나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어가고 싶기 때문에 조심하는 마음을 처음부터 알고있기 때문에 나도 그녀의 소중한 마음이 고마운 것이고 세심한 마음이 예쁜거라고 이야기해도, 그녀는 계속 그림자를 걱정한다

 

키가 큰 사람이 그림자가 길다

듬직할수록 그림자가 넓다

 

나는 그림자가 옅거나 없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수 있을까

 

 

 

따듯한 올리브와 파란색 그라데이션 사이 중간 고민이 많은 멈칫하는 그녀의 손처럼

조심성 많고 자주 멈칫하던 그녀가 여행일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환하게 웃는다

깔깔거리고 시덥지않고 점점 헛소리가 늘어가는게 마음에 든다

 

길을 찾지 못해도 괜찮다고, 일정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여러번 말했지만 날이 더해져야 정말 괜찮아 지는것 같다

그녀가 스스로 먼저 앞장서서 흥정하고 외국인들과 거리낌없이 대화하고 멈칫거리던 많은것들이 죄다 사라질 무렵

흙탕물을 걸어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도, 포커페이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무표정한 얼굴을 자주 볼수 없을때 즈음 나는 그녀와의 다음번 여행을 추상적으로 기약하고 약속받았다

 

사람들이 왜 여행을 하는건지 모르겠다던 그녀가, 어렴풋이 이래서 여행을 오나보다 라고 말하기 시작한다

다음번엔, 그녀가 미처 하지 못한 헤나를 완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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