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채로운 사케병의 디자인은 마음을 즐겁게한다


하루종일 다리가 부르트게 걸어다녔던 날, 저녁식사만 가지고는 이날의 피로가 다 사라질수 없다는걸 잘 알고있었다. 몸이 너무 지치고 피곤한 날에는 정신적으로도 꽤 힘들었을것이다. 지쳐서 말을 듣지않으려고 하는 몸뚱이에게 계속 달래기도하고 야단치기도 하면서 몸을 이끌었을테니, 머리에게도 고된 하루였겠지.


호텔로 바로 들어가서 쉬려다가 도저히 바로 잠이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조용하게 한잔 할수있을것 같은 가까운 거리의 가게를 찾아나섰다.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곳 말고, 젊은청춘들이 많아 왁자지껄한곳 말고, 홀이 큰곳 말고, 피로에 쩔어있어도 항상 원하는 것이 많은 내가 바보같지만, 그래도 찾았다. 밖에서 볼때 조그마한 가게인데 앞쪽 간이칠판에 메뉴도 무난하게 먹을수 있을것 같아서 [추천메뉴에 사케를 한잔 해야지] 생각하고 가게안으로 들어왔다


혼자서 가게를 운영하는 식당인것 같아 얼른 주방앞쪽에 자리를 잡았다. 요리해서 바로 내주기 편할것 같기도 하고 이야기도 듣고 싶었다. 메뉴판을 가져다주는데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내가 가게앞에서 보았던 추천메뉴가 없어서, 그 요리를 주문하자 일본사장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아, 그것은 우리가게가 아니고 2층의 식당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연신 사과를 한다. 내 실수지 이게 왜 사장님이 미안할 일인가. 나는 괜찮다면서 그대로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뒤적거렸고, 가게 사장은 연신 무릎과 허리를 숙이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두번의 선택을 타인에게 미루기


한자와 카타카나가 섞여있는 메뉴판의 글씨를 훓어내려가다가 내가 찍기로 고르는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메뉴판을 덮어버렸다. 이 가게에서 가장 맛있는 추천요리가 먹고싶다고 내 의사를 전달하자 가게의 사장님은 열심히 고민한다. [2층의 메뉴가 먹고싶었는데 집을 잘못찾아온 저 여자에게 내가 뭘 내줘야 가장 기쁘게 먹을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을 넘어 고민을 멈추지않더니 굳게 마음을 먹은듯 [뭔가를 해오겠다]고 하더니 이 음식을 내왔다


편식이 심한 나는, 물에 젖어있는 고기와 비계를 먹지않는다. 탁해진 국물도 싫고 씹을때의 식감에서 거부감이 많다. 다양한 자리에서 편식하지않는 척을 잘 해왔던 나도 이번에는 조금 곤란한것이, 김치나 두부나 감자라던가 채소라도 조금 있다면 살짝살짝 집어먹다가 다른 메뉴를 시켜보겠는데 이번에는 정말 고기와 물밖에 없다. 파를 집어먹고있어야할까 생각하다가 우선 사케를 주문했다


어떤 술을 드릴까요? 하고 묻는데, 첫술은 [병의 디자인을 보고 고르기보다 추천을 받고싶다]고 이야기했더니 요리를 생각할때와는 다르게 바로 OK사인을 하고, 병이 아닌 정종잔으로 따뜻하게 데워진 한잔만을 건네주셨다. 사케를 마셔도 좋다고 생각했던적이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날에서야 나는 사케맛을 알게되었다. 하루의 피로가 눈처럼 스르륵 녹게하는구나 싶어 뜨뜻한 사케잔을 쥐고 행복해했다. 목에서 내려간 따뜻한 사케는 내장을 따뜻하게 하면서 몸이 편해졌다




상대의 친절 하나로 하나를 더 기억한다


| 일본식 고기조림


내가 (파만집어)먹고있는 음식의 [이름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규수지니코미라고 한자한자 느리게 발음한다. 내가 따라서 발음하고, 아저씨가 조금 더 빨리 발음하고, 내가 조금 더 빠르게 발음하면서 깔깔 웃었다. [기억하고 싶은데 잊어버릴것같다]고 생각하고있을때 즈음 아저씨는 젓가락을 싸고있던 종이에 펜으로 요리의 이름을 써주셨다


규스지니코미, 알고보니 소의 힘줄부분의 살로 만든 조림이다. 느낌상 니코미가 조림이나 스프쯤 되겠군 생각했다. 첫 메뉴도 사실 나쁘지않아보인다. 일반인이었다면 분명 좋아했을것 같은 느낌인데 편식하는 내가 나쁠뿐, 일드 심야식당보다 훨씬 더 작은 가게가 맘에든다.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가게가 맘에든다. 차분하고 따뜻한 가게안에서 요리를 하는 아저씨와, 조용히 사케를 마시면서 [규-스지 니코미]라고 소리내서 몇번 읽어보다가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것이 좋다 


나는 푸른파를 열심히 집어먹으면서 두번째 술을 시켰다. 파에 사케는 꽤 심심한 조합이다 




원하는 것에 가깝기 위한 최소한의 추측과 고민


몇마디를 나누고 조금 훈훈해진 분위기 때문에 기분이 좋을때쯤, 자연스럽게 두번째 메뉴를 시킬수 있었다. 이번에는 메뉴판을 보고 찍을테다. 추천받지않겠다고 생각했다. 두세개정도를 고른다음 한자를 읽어달라고 이야기하자 몇몇소리 뒤에 [야키]같은 글자가 아저씨 입에서 나왔던것같다. 느낌은 대충 맞아떨어졌고, 이정도면 안주를 할수있겠다 생각하면서 만족스러웠다


선반위에 가지런한 술병들을 손가락으로 쭉 훓어가다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병을 골라서 주문했다. 두번째 나오는 는 술도 사케인데 시키고 보니 도깨비 모양이 그려진것을 고를껄 그랬나 괜히 아쉽다


가게이름이 적힌 메뉴판을 만지작거리면서 ぃなか 家 [이나가-이에] 집 가자를 보고 무슨 집일까 생각하면서 글자를 찾았다. [Country house]시골집이라는 뜻을 가지고있는 술집이었구나. 메뉴와 술을 두번 주문하고서야 내가 들어온 가게의 이름을 제대로 알게되었다. 그래, 작고 소담하고 아늑하다. 시골에서 살아보진 않았지만 왠지 내 머릿속에서의 일본가게는 이래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다. 조그마한 가게에 빼곡하고 촘촘한데 가지런하기까지 하게 일본인 종족특성으로 정리를 완벽하게 해놓은 곳에서 친절하지만 단호함을 아는 사람이 음식을 내는느낌




남길만한것을 의무적으로 사는것이 내게는 의미없다


술도, 안주도 세번을 주문했다. 이번엔 데워주지를 않는다. 차갑게 먹는 사케도 있고, 따뜻하게 먹는 사케도 있는걸까. 회는 언제먹어도 좋다. 일식은 생강을 참 자주도 이용한다. 절인생강을 좋아하나보다. 무순과 와사비를 참 좋아하는데 세번째 메뉴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늦은시간, 시간은 자정을 지나고있다. 여자는 밤늦게 외지에서 돌아다니면 안되는데, 오카야마는 번화가가 많지만 큰길의 가로등은 드문드문하고, 조용해서 오히려 신경이 쓰인다. 혼자 걷기 좋을 고요함이지만 나는 할줄아는 무술이 없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 친구와, 나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은 오늘아침 일본에서 유명한 뭔가를 샀다고 부지런히 가방을 열어서 본인이 산것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난 아무것도 사지않았어]라고 말했을때 놀란눈이 되서 쳐다보는 두눈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걷다가 우연히 갖고싶은걸 발견하는것은 좋지만 궂이 쇼핑할 시간을 따로 빼는것은 못할노릇이다. 내 개인 취향은 그렇듯, 저녁에 술로 시간을 지출하는것이 이해못할 사람들도 많겠지


역시, 작은가게와 따뜻한 사케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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