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라켄 / 스위스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틀어진 일정 대신 만난 풍경

내가 기대했던 풍경 대신, 내가 항상 상상했던 풍경을 마주하다



스위스를 여행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터라켄은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는 마을일것이다. 융프라우로 올라가기 위한 역으로, 세계의 명소중에서도 드높은 이름을 가지고있는 명물이기때문에 인터라켄 역시 덩달아 유명해졌고 당연스럽게 등산을 위해 1박을 하는사람들이 거치는 숙소같은 곳이다


내게도 인터라켄은 정말 잊지못할 곳으로 남아있는데, 융프라우를 가기위해 그 먼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건만 정작 여독으로 체력의한계를 느끼고 융프라우를 포기해야했다. 나는 도데체 이곳에 왜 온 것인가. 씁쓸한 마음은 호텔방안에서 달래질리 없었고 착잡한 마음으로 식사만을 밖에서 해결하고 아쉬운 마음에 가벼운 산책정도를 유지했을뿐 나는 결국 스위스의 융프라우를 내 눈에 담지 못했다


체력적으로도 완전하지 않고, 쉽게 잘 고장나는 몸을 가진나는 정말 여행에 맞지않는 사람인것같아 여행지에서 퍼질때마다 마음이 급속도로 우울해진다. 생각해놓았던 일정이 건강으로 인해 틀어지면서 손해보게되는것은 단지 시간과 투자한 돈정도로 끝나지않는다. 몇달을 꿈꿔오고 그렸던 기대감은 물론, 다시 또 언제오게될지 모르는 여행에서 영원한 불가능으로 돌아서는것같아 씁쓸할 뿐이다


예쁘고 알록달록하다고 좋아했어야 할 집들과 풍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가는곳마다 공사중팻말만 거슬리는걸 보면 정말 속이 상할대로 상했던 날이었다




행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언제나 중요한 체력관리


| 인터라켄 역 앞


여행 일정 짜는것을 정말 좋아하는 내 잘못이었다. 맛있는것이 있다면 아껴놓았다가 가장 마지막에 먹는 버릇때문이었다. 융프라우에 대한 기대치는 스위스 전체 일정과 맞바꾸더라도 훨씬 더 마음이 치우쳐있었고 내마음을 벅차게 할 일정은 항상 톨아오기 전날로 잡아서 내 기대감과 감동을 극대화시키는것을 좋아했다. 일정을 조금만 더 여유롭게 잡을껄, 아니 이 일정을 먼저 잡았어도 되는건데 하는 후회가 이제와서 무슨소용이란 말인가


인터라켄 어제까지만해도 나는 그저 들뜨고 행복에 벅차서 마을을 신나게 쏘다녔을 뿐, 체력비축이라던가 하루 당겨서 기쁨을 맛볼생각같은건 해보지도 않았다. 인터라켄을 떠날때까지 마음이 얼마나 서러웠으면 인터라켄 역앞에 걸린 스위스 국기마저 미워보일정도였다




융프라우에 숨겨진, 약속된 보물찾기


식사를 위해 대충 레스토랑을 잡았는데, 체온이 떨어져있는 상태에서도 기어이 야외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싶었다. 이주전에 같은 회사의 타 부서 차장님이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스위스와 두바이를 거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던 중에 우리 둘다 융프라우를 보기위해 인터라켄에 머무는 일정이 있다는것을 알았다


여행일이 다르지만 같은곳을 간다는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우리는 차장님이 먼저 융프라우에 가서 신라면 한개를 산 꼭대기 눈덮인 특정위치에 숨겨놓고 사진을 찍어보내줄테니 2주후에 내가 가서 그 컵라면을 꺼내먹기로 약속하고 깔깔거렸다. 차장님은 약속대로 융프라우에 먼저 올라가서 내게 메시지를 보냈고 나는 이제 그 컵라면을 찾는 보물찾기의 일정만이 남아있었다. 꼭대기에서 파는 라면은 비싼데 기꺼히 하나를 묻어두고 왔으니 나는 뜨거운 물값만을 지불하고 혼자만의 재미를 느낄수있었는데 나는 지금 눈덮인 산을 보면서 야외테라스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고있다


그 컵라면을 내가 언제 다시 찾아서 먹을수 있을까. 서러운일도 아닌데 속상한 마음에 눈물까지 맺혔다




언제나 휴식을 제공하는 호텔방, 오늘은..


| 호텔방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대충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는데, 일정이 없는날의 오전은 시간이 가질않았다. 몸살과 오한이 같이느껴지는데 커튼을 열고 창밖이 보이게 해놓았는데 여전히 서러운마음이 가시질않았다. 그렇게 잠깐 잠이들다 깨어났는데 몸도 기분도 한결 나아졌지만 그래도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것은 시계. 


[지금이라도 가면 융프라우를 볼수있을까]하는 마음은 수학여행때 마지막날 밤 전교생이 모여 축제를 하는데 혼자 아파서 약먹고 방구석에 누워있는 기분같았다. 째깍째깍 느리게 움직이는 초침을 보면서 이렇게 누워서 마지막날을 보내면 정말 평생 이날을 잊지못할것 같은 마음이 들었던 나는 평소보다 옷을 두껍게 입고 가볍게 산책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잘 정돈된 풍경은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 인터라켄 주택가 뒤로 난 기찻길 풍경


여행의 마지막날, 그래도 내 마음에 담을수 있을것들을 담아봐야지. 느리게 걷고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않는 일정에서 휴식을 갖는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소중하게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호텔에서 나와 카메라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인터라켄의 카지노를 지나면서 [가지고있는 돈을 저기다 다 탕진해버려?]하는 절망에서 오는 씁쓸한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무난히 카지노를 지나쳤다. 후토스에서 섹시한 비키니를 입은 언니들이 내주는 재미있는 저녁을 먹어도 감흥이 떨어질것 같은날. 재미와 유흥거리 말고 마음을 조금이라도 채워주어야했다


청록색의 예쁜 호수길을 따라 백조와 오리도 보고, 나오는 철길을 따라 쉬엄쉬엄 걷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무런 목적도 목표도 없는 그냥 걷는 시간은 호텔방 침대와 비할나위가 아니였다




내가 기대했던 풍경대신, 내가 항상 상상했던 풍경을 마주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인터라켄의 마을은 사실 이런 느낌인거구나. 호텔앞쪽의 번화가와 호텔, 레스토랑, 역사등의 뒷편은 예쁜 스위스의 시골마을같은 느낌이었다. 당나귀를 키우고, 말을 타고 한손에는 다른말의 고삐를 쥔 여자와 스쳐 다양한 동물과 시골(채소보다는 동물을 키우는)의 그림은 참 예뻤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풍경은 내 마음을 충분히 채워주고도 남았다. 또래끼리 놀다가 눈이 마주치니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인터라켄 앞쪽으로는 여행객들이 많이 지나다녀도 한참뒷쪽의 오르막쪽으로 향하는 농가쪽을 지나다니는 외부인은 별로 없었나보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사실 인터라켄 꼭대기 어떤 국가의 깃발옆을 파보면 컵라면 한개가있단다, 너희가 발견하게되면 먹어]라고 말해줄까 하다가 어느나라에서는 어린아이에게 함부러 다가가거나 말을 거는것도 금지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 참았다. 누군가에게 내 보물의 위치를 선물처럼 알려주고 떠나야 마음이 조금 더 홀가분할텐데. 호텔말고 호스텔에 묶을걸 그랬다




소소한 즐거움, 만남


| 상냥한 노부인과 몸매가 환상적이었던 검은고양이


운동장만한 공간에서 20마리도 안되는 닭을 풀어서 키우는 농가들을 지나, 정말 시골길을 걷고 걷다 만난 검은고양이. 주머니에 먹을것이 없었는데도 눈이 마주치니 다가와 애교를 부리기에 한참을 만져주었다


길가에서 만난 검은고양이는 내가 만져줄때마다 따라오라는듯이 살짝살짝 자리를 이동하면서 나를 기다리다가 다시 벌러덩 드러누워 애교를 부리곤 했는데, 검은 고양이를 따라 오리걸음으로 이동하다보니 예쁜 튤립이 가득 심어진 집에 할머니가 나와 고양이를 불렀다


머쓱해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할머니는 나를 불러서 고양이의 이름을 말해주고 성격과 취미활동(고양이의)등에 대해서 가볍게 이야기를 꺼내더니 고양이를 다시 내품에 안겨주었다. 난 적당한 애교에도 만족했는데 고양이는 자신이 살고있는 집을 보여주고싶었던걸까,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주고싶었던걸까




인터라켄의 마지막 밤


해가지고 나는 느린걸음의 산책을 마무리하면서 호텔로 돌아가고있었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거리에는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나는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 스위스의 시계하나 사지않고 스위스 인터라켄의 융프라우한번 올라가보지 못하고 [이게뭐람]하는 마음이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지만 오전의 마음에 비해 많이 차분해졌다


여행의 진정한 묘미는, 내가 어디에서 어떤 상황을 만날지 알수없는것이라던데 이번일은 체력관리와 계획의 잘못으로 인한 내 잘못이었지 틀어진 일정을 싹 잊어버리게 할만한 반전은 없었다


다만 호텔방에서 하루를 누워보냈더라면 정말 참담한 기분이었을텐데, 스위스시골 농가의 풍경을 마음에 담은점이 다행스러웠다. 친절한 사람들, 이방인이 낮선 아이들, 넓은초록들판에서 걱정없이 건강한 동물들, 평화롭고 정적인 풍경은 항상 내가 마음속에 생각해왔던 스위스의 그림 그대로였다




20151217 / 이 포스팅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소개되었습니다

20151218 / 이 포스팅은 티스토리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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