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귀여운 소리가 모여 풍경이 되는 사랑스러운 곳

작은 햇빛에도 따뜻하고 조용하게 반짝거리는 예쁜 풍경
 

 

 

뒤척이면서 세 시간도 채 자지 못한 채로 날이 밝았다. 
동행인들이 잠이 깰까봐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인채로 슬그머니 창가로 걸어가 암막커튼을 양쪽 손으로 움켜쥐고  커튼  틈사이로 바깥 날씨와 아침 풍경정도만 체크하려고 잘 떠지지 않는 눈을 가져다 대었다
 
일주일 내내 비가 단 한순간도 쉬지않고 내리겠다고 선포했던 일기예보는 틀렸다
눈부시지 않을 정도의 부드러운 햇빛 아래 조용한 해변가에는 커다란 개 세 마리가 폴짝폴짝 뛰면서 장난치고 술래잡기를 하듯 원을 그리면서 놀고 있었고, 그 귀여운 풍경 외에는 바람도 없는 따뜻하고 얌전한 야자수잎들의 적막만이 가득한 그림보다 사랑스러운 아침이었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풍경에 입꼬리가 올라가버린 나는, 동행인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행동했던 조금 전까지의 상황과 놓치면 안될것 같은 창밖의 풍경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가 그녀들이 잠들어 있는 침대로 다가가 팔을 살짝 흔들어보았다
 
깊이 잠들어 있으면 내버려두고, 얕은 잠을 자고 있다면 바깥 풍경을 보여줘야지
 
두세 번 얕은 정도로 흔들었다고 하기도 무색할 정도의 터치에 순순히 빠르게 깨서 나를 쳐다보는 동행인을 보고 나는 바로 입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쉿' 제스춰를 취한 뒤, 밖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를 하는 개들이 우리 소리에 흥이 깨져 뛰어다니는 것을 멈출까 봐,  나는 최대한 조심히 그리고 조용히 비몽사몽 상태인 그녀를 데리고 창가로 데려갔다
 
커튼을 걷는 소리는 시끄러우니까, 나는 아까처럼 커튼틈 사이로 여전히 손가락 하나를 입에 댄 상태로 사람을 조용히 시키면서 해변앞 야자수 사이 모래 위를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보여주는데 집중했다
 
그녀는 정신없는 상태에서도 묵묵히 조용조용 창가로 다가와 눈을 가져다 대고 바깥풍경을 잠시 염탐하더니 작은 소리로 '하...' 하고 내뱉더니 행복이 가득 차오른 얼굴로 '너무 귀여워, 정말 예쁘다'라고 낮게 속삭였다
 
 
 

정말 천국같은 아침이었다
수면의 양은 중요하지 않을, 머릿속의 어떤 상상보다 훌륭한 아침을 맞이했다
 
가볍게 인근을 둘러보고 오겠다고 옷을 입고 나가려는데, 더 자도 되는 두 사람이 따라나선다
두 살 많은 이모에게는 커피를, 다섯 살 어린 동생에게는 망고아이스크림을 계획대로 먹이고 내일 아침부터는 알아서 각각 한 명은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러, 한 명은 망고주스를 마시러 알아서 들락날락 제집처럼 이 동네를 드나들며 지내기를 바래본다
 
가방 가득 옷을 챙겨 온 것 같은데도 옷을 충분히 가져오지 못했다는 큰 동행인의 섭섭함도 채워줘야지.
주변 옷가게도 들락날락하면서 그녀에게 어울릴만한 옷들을 몇 번 대보고, 내가 좋아할 만한 조용하고 차분한 곳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면서 번화가와 주변 해변들을 산책하듯 돌아다녔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치면 그쳤다는 이유로 이곳은 계속 아름다웠다
 
이곳에 도착한 뒤로 모델 같다는 찬사를 매일 듣고 지내는 이모는 입이 자주 귀에 걸렸다
여전히 부끄러움 많은 입은 쉽게 떨어지질 못해서, 한 번도 다른 낯선 사람과 스몰톡 한 번을 주고받기도 버거웠지만 입꼬리가 올라간 상태로 통통하게 차오른 기쁜 볼은 대부분 높은 곳을 유지하고 있어서, 대체로 비만 오지 않으면 그녀는 계속 행복한 얼굴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아 막내노릇을 하고 있는 동생은 여행 전부터 버거운 상태의 컨디션으로도 좋은 에티튜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빤히 보여서 짠하고도 대견한 마음으로 지켜보는데, 역시나  맛있는 음식 앞에서, 예쁜 바다 앞에서, 우리의 계획 안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즐기는 동생은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여행을 본인 마음 가득 즐길 줄 아는 소녀였다
 
 

숙소 앞 해변에서 그녀들이 패들보트를 타면서 패들링을 하는 동안, 조개껍데기로 엮은 풍경이 무수하게 많이도 걸린 비를 가득 머금어서 진해져 버린 나무 그림자 아래 매트를 깔고 비치타월을 깔고 앉아 망중한을 즐겼다
 
서로의 시야 안에서 각각 또는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노로 해초를 걷어올리면서 깔깔거리는 것을 조용히 바라보는 동안, 며칠 마주쳤다고 수줍어서 말도 못 하던 소년에서 막 벗어나서 어른이 될까 말까 한 남자아이가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왜 같이 바다에서 놀지 않는지, 우리 셋은 어떤 관계인 건지,  이곳에 와서 요가를 하고 바다에 뛰어들지 않고 얌전히 앉아서 구경만 하는 내가 조금 이상하다고 말하면서 내 옆에 놓인 카메라에 담긴 사진을 궁금해하고 내가 사진작가인 것일까 혼자 유추하는 평소에 말이 적었던 아이의 종알거림이 귀여워서 카메라 조작법을 가르쳐 준 다음 그 아이에게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강아지가 지나다닐 때마다 이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을 몇 번 봤던 것일까
해변을 돌아다니던 강아지 한 마리를 불러서 내 옆에 보답으로 앉혀두더니 내 카메라를 가지고 내 시야 안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도 셔터를 눌러대었다
 
블라복의 해변 풍경을 열심히 담고, 비에 젖어 축 늘어진 자기 마음대로 휘어진 야자수들을 또 열심히 담고, 굳이 멀리 떨어져서 나무아래 앉아있는 나를 열심히 담아보고, 줌을 당겨서 다시 담아보고, 패들링 하고 있는 이모와 동생을 불러서 보트 위에서 요가동작을 잡게 하고는 피사체로 사용하기도 하면서 아마도 처음 쥔 커다란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게 제법 흥미로웠는지 십여 분동 안 열심히 찍어온 사진을 내게 말없이 조용히 보여주었다
 
나는 정체 모를 누렁이인 듯 한 검둥이 개와, 소년인 듯 청년인 듯 한 내성적이고 말을 잘하지 않던 눈빛이 예쁜 조용한 아이가 찍은 사진을 구경하면서,  풍경으로 매달아 놓았는데 소리가 나지 않는 조개껍질이 걸린 나무 아래 앉아서 귀여운 시간을 보냈다
 
 
 

한 시간을 대여해 주겠다던 패들보트는 두 시간 가까이 타고 놀아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서서히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고서야 두 여자는 돌아오기 시작했고 하루종일 뛰어놀기 바쁜 강아지들도 그제야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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