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아클란의 탱고, 바시모의 슬픔

정말 가장 완벽하게 어울렸던 
 

 

 
칵반 비치 해변길을 따라 어디까지 갈 수 있었을까

어차피 섬은 여의도 보다 조금 큰 정도니까 마음만 먹는다면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쳐 돌아온대도, 내가 최선을 다해 멀리 걸었다고 해도 교통비가 만원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면 당연스럽게 모든 곳으로 향하는 경로가 산책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쥐콩만한 섬에서 교통편을 이용할 일이 과연 몇 번이나 될 것인가

 

내가 걷고 산책하는 동안 이미 이 해변가를 점령한 멋진 커플은 글리사드로 모든 곳을 이동했다

 

 

고운 모래에 감탄하고 이끼 낀 기암을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을 풍경이었다

아침이 되면 물에 잠겨서 온데간데없는 풍경이 되어버리는 곳이, 오후에는 얇게 비치는 겨우 스커트 밑단 같은 파도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조용하고 얌전한 포말들만 내게 보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얼굴을 한 내 동행인 하나는 이 멋진 풍경들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멍든 것처럼 파랗고 차가운 비바람만을 마음에 담아 갈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부터 꾸준히 방관자면서 관찰자인 성향의 나는 변한 것이 없다

상황에 따라 나도 마음에 얼룩이 생기기도 하고, 그래도 좋은 것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언제나 모든 상황이 다 이해되지만 같이 늪으로 빠질 마음도, 불필요할 위로를 건넬 마음도 없다

 

굳이 소리 내서 공감하거나 억지로 누군가를 건져 올리는 행위는 잠깐의 내가 환기를 위해 시도하는 필요에 의한 행위일 뿐일 것이다. 같이 잠식당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이곳이 너무 좋아서 슬픈 내 동행인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일탈의 상징이었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설레하고 좋아했던 색색의 실들을 다 풀어내고 거울을 보면서 '내가 아닌 것 같아' 자신으로 돌아온 너무 이른 시간에, 마지못해 걸어 다니는 그녀가 이곳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했던 그녀는 며칠 동안 누구보다 반짝이고, 빛나고 예뻤다

분명히 나보다 더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바꿀 수 없는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몫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묵묵히 해내는 행위를 항상 나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하나하나 일궈낸 모든 것들이 내 눈에는 더없이 훌륭하고 대단해서만 그녀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른들을 통해 내 귀로 들어온 관심 없는 누군가의 삶, 지탄, 철없음, 걱정들과

내가 마주하는 그녀는 언제나 상반된 색을 가지고 있어서 알록달록한 장난감 앞에 귀엽고 욕심 많은 여자아이.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의 화려한 옷들과 이상한 원단들, 그리고 어른들이 좋아하지 않던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20대가 나는 싫지 않았다

 

서른이 넘어서야 우리는 연락을 하고 친구가 되고 자매가 되어가는데, 사실 언제나 그녀의 근황은 이미 내 귀에 굳은 딱지처럼 들어와 있어서 내적 친밀감을 넘어 내게는 유아기 때부터 사춘기를 거쳐 사회초년생을 지나 중년이 되어가는 그녀는 내게 에쿠니가오리가 새로 집필하고 있을 소설 안에 만들어지고 있는 미완성된 인물 같은 사람이었다

 

 

폭우 속 맞은편 테라스에서 시작해 해변과 온갖 풍경의 이름이 무의미해질 만큼절대 멈추지 않는 탱고 덕분에, 그녀는 잠깐이나마 웃었다가 그조차도 감흥 없이 싸늘하게 그들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풍경은 탱고만도 못하고,  탱고는 개나 고양이보다 못하다

아니, 사실은 모든 의미 있었던 것들이 모두 의미 없어지는 중이다

 

나는 언제나 가장 번잡하고 화려한 곳의 사진을 동생에게 보내고, 그 풍경에 매료된 동생이 합류하면 가장 조용한 곳에 자리 잡는 행위를 반복해 왔는데 이제 한 명을 더 늘려봐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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