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바람 없는 야자수 그늘아래, 따듯한 모래 위에서의 요가 

수양을 하기에는 너무 행복해
 

 

 
 
아침부터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잠에서 깨고 암막커튼을 걷어 강아지들이 뛰어노는 풍경을 봤을 때부터
동생과 이모의 입에 망고아이스크림을 넣고 오물거리는 귀엽고 통통하게 차오른 볼탱이와 입꼬리를 봤을 때에도, 어디가 좋을지 요가할만한 적당한 그늘이 있는 공간을 찾아 산책할 때까지도 
 
너무 뜨겁지 않고 적당한 바람이 불어주는 것만큼 완벽한 하루를 시작했다
 
 
 
 

일찍 일어난 만큼 해변은 한적했다
텅 빈 모래사장 위에 오붓한 가족들이 나와서 모래성을 쌓거나 
자매처럼 보이는 젊고 부지런한 여인 둘이 조용한 아침의 바다를 사진에 담고 있었을 뿐이다
 
어딜 가나 보이는 작은 세일링보트는 우리 마음속에 작은 액세서리 같았다
오늘 저녁이나 내일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우린 노을을 보려고 해변으로 나와서 세일링보트를 타기로 약속했다 
 
맑은 날에 타는 것도 좋겠지만, 그깟 노을이 얼마나 대단할지 온 세상에 오렌지색으로 번질 때 즈음 이모는 해를 받치고 있는 사진을 꼭 찍어달라고 이야기했을 만큼 그 시간을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보트들을 마음 한편에 담아 가면서 우리는 요가매트를 펼 장소를 향해 걸었다
 
 
 

우리만큼이나 부지런한 필리피노 현지인들은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손을 흔들면서 이모에게 찬사를 보냈다
 
[모델이야? 와우!] [모델이 분명하군] [정말 아름답다]
첫 만남에 생각나는 대로 찬사를 무작위로 내뱉는 현지인들에게 이모는 답인사를 건네지 못할 만큼 수줍었지만, 그들 덕분에 이미 따뜻한 상태에 기분 좋았던 커피 같던 사람이 부드러운 거품이 가득 올라간 에스프레소 콘파냐정도로 기분 좋게 사랑스러워졌다
 
이모는 우리에게 선물로 주려고 운동할 때 쓴다는 땀수건을 챙겨 왔다고 나눠주었고
나는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고스란히 고마운 마음을 고대로 가방에 담아 넣었다.
아마 평생 쓰지 않고 그냥 소장한 채로 넣어둘 것 같아 :) 
 
 

타임랩스를 남기는데 재미를 들린 이모가 삼각대를 들고 설치할 동안, 동생도 삼각대 설치에 합류했다
이모의 훌륭한 바디프로필을 찍어줘 보겠다고 호언장담한 나는 DSLR을 매트가 모래 위에서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는 문진으로 사용했다 
 
바닥은 적당히 따뜻해서 매트 위까지 온도가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고, 야자수의 그늘을 잘 따라서 매트를 펴내고 좌골을 깊숙이 바닥에 붙이고 앉아 그녀들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바닥의 모래를 만지작거렸다
 
이모는 항상 나에게 [넌 하타가 잘 맞을 것 같아, 하타가 항상 필요해 보여]라고 수도 없이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늘 하게 될 요가가 아쉬탕가나 빈야사나 힐링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겠다
 
 
 

플라잉요가니 필라테스니 번지 피트니스니 하는 것들을 무작위로 하면서 재미만 쫓아다니는 자매에게, 이모는 요가 선생님으로서 요가를 깊이 알려주고 싶고 긴 시간 몸을 이완시켜주고 싶다고 매번 아쉬운 종알거림을 들릴락 말락하게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아마 오늘만을 고대했을 것이다
 
항상 긴장되고 집중되어 있는 상태를 평생 가지고 사는 내게 하타를 처음 접하게 하고 싶었던 이모는, 만날 때마다 항상 주도하지 않고 매번 따라주고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이었다가 본인의 수업이 시작되자 내가 알던 사람보다 훨씬 더 자상하고 따뜻하고 애정과 정성이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지도해 주었다
 
동생은 카메라를 만졌다가 사진을 찍었다가 중간중간 움직여대면서 100%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ADHD 어린이같이 행동했는데 중간중간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지만, 이모는 그대로 내버려 둔 채로 세상에서 제일 온화한 미소를 담은 얼굴로 진심을 다 담아 운동을 도와주었다
 
아마도, 이모가 여행을 온 가장 큰 이유이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고 가장 자신다운 순간이리라.
 
 
 

우리는 한 시간가량의 따뜻했던 수련을 끝내고 바다 앞에 앉았다
평소에 같이 찍고 싶었던 사진을 원 없이 찍고, 깔깔대면서 웃음과 함께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면서 그녀 덕분에 얻은 특별한 순간을 마음껏 누렸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이곳에 머물면서 가장 따듯했던 온도에, 가장 따듯했던 시간이 이때였고
이모가 가장 열중하고 온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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