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행복한 레게 걸즈

세상 모든 색을 다 쓰겠어
 

 

 

10여년전부터 드레드록스 스타일을 기회 될 때마다 해보고 싶었던 나는 매번 동생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어차피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라면 해외에서 기분전환용으로만 가능하다고 수많은 여행길에, 수많은 순간마다 공들여서 그녀를 설득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혼자 냅다 저지르기에는 지체되는 시간이 너무 길었고, 일행이 있는 상황에는 어려울수밖에 없어서 번번이 포기하다가 이번에야 말로 기회가 닿고 말았다

 

항공권을 끊자마자 이모와 동생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레게머리 사진을 메신저로 보내고는 드디어 한 명을 설득한 것이다. 한 명이 동참하자 다른 한명이 따라오는 것은 쉬웠다

 

 

 

우리는 스테이션 2에 레게머리를 하는 가게가 몇 군데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예정된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비바람이 온 세상을 뒤집고 삼킬 만큼 불어오고 있었고, 필리핀 정부에서도 입수 및 모든 수상스포츠를 금지했으니 할 일도 없었겠다, 호객행위를 하던 사람들도 태풍 속에서 자취를 감추고 펄럭거리면서 뿌리째 뽑혀나갈 천막들 속으로 대피해 있었다

 

오늘처럼 궂은 날씨에 장사가 될 리 만무한데, 이곳 사람들은 가만히 천막 안에 앉아서 월척을 낚았다

스스로 제 발로 찾아온 고객 두 명이 적당히 기분내기용으로 한두 가닥만 땋기를 원하는 것이 아닌, 직접 챙겨 온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최대한 많은 가닥을 형형색색의 색을 다 사용해서 누가 봐도 손이 정말 많이 가고 오래 걸리는, 많은 재료들을 쓴 [비싼 머리]를 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펄떡거리는 월척 두 마리를 바로 의자에 앉혀두고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천막을 고정하는데 온 힘을 쏟으면서도 미소가 번졌다

 

 

 

 

항상 온갖 현란한 컬러를 사랑하는 동생에게 5색 이상 사용금지령을 내렸던 나는 오늘의 구경이 즐거웠다

사실은 나도 그녀들 사이에서 머리를 나란히 땋고 있었어야 했지만, 여행 전 여윳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주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경비가 상당히 쪼그라들었고, 자연스럽게 레게머리를 포기했다

 

많이 아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만히 앉아서 색실을 골라주고 그녀들의 변천사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즐거웠다

 

최대한 많은 색을 선택했던 동생과는 다르게, 톤다운된 블루톤의 서너 가지 컬러를 골랐던 이모는 옆에서 시간이 다르게 알록달록 해지는 동생의 헤어를 곁눈으로 보면서 실시간으로 마음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나도 색깔 몇 개 더 넣어서 할까] [어떤 색을 더 넣어야 할까] 망설이면서 부러운 마음이 커져가던 귀여운 여자사람에게 나는 보라색과 핑크색과 흰색이 더 들어간 그러데이션 레게스타일 사진을 보여주면서 더 현란해질 것을 부추겼고 그녀는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어깨에 머리카락이 닿지도 않던 짧은 단발이었던 동생은 긴 실을 이어 붙여서 엉덩이 위까지 찰랑거리는 스타일로 변신하고 있었고,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이마와 볼이 동그랗게 드러나서 진한 이목구비가 더 예뻐 보였다

 

머리를 땋는 긴 시간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와중에도 태풍은 쉴 새 없이 천막을 두드렸다

좁은 천막 안에서 쉴새없이 바쁜 손들은 동생에게 두 명, 이모에게 세 명이 붙어 움직였는데 머리를 땋아주는 현지인들의 손보다 입이 더 바쁘고 그들의 농담은 야하고 매워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배를 잡고 웃었다

 

한 명 한명 모여들다 보니 5평 남짓한 천막 안에 9명이 좁게 다닥다닥 붙어서 시끄럽게 깔깔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여러 가지 일들로 체력관리가 안되던 동생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머리가 땅으로 꺼진 채로 꾸벅거렸다

 

 

 

 

긴 시간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어렵게 완성된 레게머리를 하고 이모와 동생은 이 조그만 섬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비가 와서 맑게 갠 시간이 불과 세 시간도 되지 않을 정도의 매일매일에도 그녀들은 가장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이곳저곳을 들락거렸고 그녀들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현지인의 감탄사를 받아내면서 [나 너 기억해, 알고 있어]하는 상황을 만들어 가곤 했다

 

아무도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레게머리를 한 두 여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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