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끝없는 주문과 끝없는 허기

내 취향이 확고하게 선명할 때 
 

 

 

 

 

아마도 동생의 아메리칸 브렉퍼스트 식사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대충 호텔 조식이 뷔페든 원메뉴든 무난하기만 해줘도 다행이라는 것을 여행하다 보면 생각보다 자주 느끼게 되는데, 그 쉽지만 무난하지 않은 메뉴들이 무난하게 성공할 때 이곳은 그래도 중박은 치는 곳이라는 근거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어렴풋하지만 긍정적인 추측과 심증만으로 끝도 없이 지갑을 열게 되는 날이 있다

 

그녀는 그동안 못먹었던 울분을 이곳에서 해결하고, 모든 지갑의 돈을 다 남기지 않고 가려는 것처럼 먹는 내내 손을 들고 새로운 메뉴를 주문했다

 

나는 그녀의 이런 모습이 가끔 마음에 들지 않고, 부족하지 않게 차리고 먹으려는 중국인같다고 느끼곤 하지만 그동안 그녀가 제대로 못 먹은 것도 사실이다

 

 

 

 

연타로 주문한 고기볶음류가 성공한 이후부터,

그녀는 열심히 메뉴판을 보고 확실히 주문에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먹기 딱 깔끔한 정도의 식사량이었고 살짝 아쉬운것도 사실이어서 느듯하게 차 한잔 하면 거북하거나 과식한 듯한 느낌 없이 좋을 정도였다

 

 

 

 

 

그녀가 가지 그린 커리를 주문했을 때부터, 내 직감은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녀를 말릴 생각은 없었다

여행 내내 시간에 쫒기고 동행인을 배려해 보겠다고 고생했던 강아지가 아닌가

 

나름 경험해 본적 없는 중대사를 본인이 맡아 처리해 보겠다면서 정신없고, 그 와중에 제떼 끼니도 채우지 못해 힘들었을 그 아이의 감정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서, 

 

[오늘 날 잡았다. 그동안의 울분과 식탐을 이곳에서 먹는 것으로 채우겠다]는 눈빛을 이해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것을 물어보고 어떤 것을 허락받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수긍해 주었다

 

 

 

 

이곳에서 몇개의 메뉴를 먹었는지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 

확실히 2년넘게 꾸준히 운동해 왔던 루틴이 망가진 것은 확실했다

 

내 생각에 허기와 만족도는 다른 영역이라서, 사실 이미 그녀의 허기는 어느 정도 채워진 것 같은데 다른 편에 존재하는 만족도가 오늘 안에 채워질 것 같지 않았다

 

욕심을 채워보려는 그녀의 시도 앞에서 사실 점점 나는 텐션이 떨어졌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실, 그녀와 나에게 필요한것은 그동안의 미세하게 누적된 피로와 잘잘한 이야기들을 나누다 털어버릴 한잔의 술이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었는데 술 한잔이 갖는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이 정도로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인지 이번에서야 알게 된 것 같다

 

우리의 자제력은 대단했다

 

속상하거나 일이 마음대로 되지않았을때,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덮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온갖 이유를 대면서 멀리했던 한잔의 밤을 다른 것으로 채워내기에는 부족했지만 확실히 다른 길로 향하자고 약속하고 다짐하는 매 순간, 생각보다 잘 해내고 잘 참아내고 잘 버티고 잘 넘기고 있었다

 

 

 

 

 

 

적당하고 살짝 부족한듯 할때가 사실 가장 만족스럽다는 것을 오늘도 느끼지만

사실 사는것이 마음처럼 되던가.

 

이곳에 도착하고도 괜찮아 좋다 드디어 모든 게 계획대로 돌아간다고 몇 번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그녀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몇 가지와 꼬여버린 것들에 마지막 날들까지도 스트레스와 죄책감을 끌어안았다

 

밤은 지고, 사물이 분간하기 어려울정도로 어둑어둑 해 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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