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랄랄라라라 필리핀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Bohol Smile, There's Coffee

예상치 못한 선물
 

 
 
 

우기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날이 더웠다
숙소에서 항상 10분 15분 거리면 걸어도 되지 않냐고 묻는 동행인의 말에 '드디어 오늘이구나' 싶었다

사람은 본것만 이해할 수 있다. 경험해야만 진심으로 알 수 있다

 

잠깐잠깐을 이동하는데 매번 교통비를 지불하는것이 아까울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걸어가보기에 흔퀘히 동의했지만 어깨가 가려질 듯 한 큰 모자를 단단히 묶어 썼고 평소에는 잊어버리고 마는 선크림도 온몸에 가득가득 발랐다

 

영리한 그녀는 내 준비하는 모양새를 보고 어딘가 불안했는지 

[양산을 가져갈까요?] 하고 슬그머니 묻는데, 나는 존중하지만 당신의 자유에 맞긴다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그녀는 자신의 판단에 후회하기 시작한다

나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전에 빠른 판단을 하고 후회하는 그녀가 밉지않았고 땡볕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동하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평소의 컨디션이었다면 상관없었겠지만 겨우 도보로 10분정도를 앞서 허비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에어컨이 있는 가게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팡라오 섬의 많은곳이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에어컨이 없는 곳이 태반이어서, 시원한 곳에서 한적하게 엎드린 채로 핸드폰으로 어디 갈지를 보고 결정했다면 쉬웠겠지만 뜨거운 직사광선 바로 아래서 한 집 한 집을 기웃거리면서 에어컨 존재의 여부만을 확인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제 에어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 데나 그늘만 찾아서 들어가기라도 해야 할 때 즈음, 나는 카운터에 물을 주문하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연히 들어간 가게 치고는 에어컨이 나오고, 스케치북에 색연필까지 구비되어 있다

 

온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에 범벅이 된 채로 눈이 다 풀린 동행인의 상반신을 그릴동안 그녀는 앉지 않고 음료를 받아서 들고 들어올 생각인지 계속 카운터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음료를 들고 와 앉았다

 

같이 기다리지 않고 먼저 들어와 앉아있다고 잠깐 나를 타박한 것 같은데

이곳은 셀프서비스가 아니라서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직원이 음료를 가져다주는 곳이 맞다

사실 보홀도 팡라오도, 거의 대부분의 가게라고 할법한 곳들이 그렇게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덥긴 많이 더웠나 보다

 

 

 

내가 그녀의 투정에 씩 웃고 넘기고는 그녀를 그리는 동안, 내 대각선 옆테이블에 혼자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시던 여자가 슬그머니 나에게 다가오더니 부끄럽게 스케치북을 내밀었는데, 턱선을 가릴정도의 긴 단발머리에 얇은 어깨끈과 브이넥으로 깊이 파인 끝단이 프릴로 풍성한 원피스를 입고 있는 도화지 위에 그려진 여자가 나인 것은 분명했다

 

갈색얼굴에 붉은색 홍조가 차오르는 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던 그 여자는 대학생쯤 돼 보였는데, 혼자 그림 그리고 있던 내가 엉겁결에 피사체가 된 것 같았다

 

 인스타를 하지 않아서인가 서로 SNS를 교환하지 않고 그냥 말로만 감사하고 보낸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최선을 다해 감사한 마음을 기쁘게 전달하고 헤어졌다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뜻밖에 선물을 받는 날은 하루가 기쁘다

 

 

 

걷고 싶어 했던 그녀가 이제 땀을 좀 식힌 것일까

심심해서 막연히 색연필만 깎아대면서 종이컵 반틈을 색연필 나무껍질로 채우겠다던 목표를 버리고 색칠욕구를 드러냈다

 

원하는 건 다 해야지

나는 스케치북을 그녀 앞으로 돌려놓고 카페를 둘러본다

 

조금은 시끌시끌했던 공간이었는데, 스트레인저걸이 나를 그려준 순간 이후로 카페가 매우 조용해졌다

사각사각 그림 그리는 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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