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차나부리 / 태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초라하지만 벅찬 하루, 물위의 하룻밤

괜찮아. 사실 어떤일이 생겨도 괜찮을것을 알고있었어



칸차나부리에 머물면서 밤을 어디에서 보낼것인가를 고르는 일은 꽤 즐거웠다. 보통 고만고만한 리조트나 게스트하우스에서 가든뷰냐 오션뷰냐를 따지는것과 가격대에서 망설이던 다른 여행과 달리 칸차나부리의 숙소중에 텐스안 야영을 할수있는 숙소와 낡은 오두막집같은 물위에 떠있는 숙박시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한적한 시골이고 가로등도 그다지 많지 않은곳이니 두곳중 어느곳을 골라도 밤하늘의 별아래서 보내게 될 밤의 시간은 따놓은 당상이었다


긴 고민끝에 250바트 (대략 8천원)밖에 하지않는 수상가옥을 선택했다. 몰디브의 수상가옥이나 휴양지의 물위의 하룻밤을 생각한것은 아니었다. 사진속 낡아빠진 벽지와 나무위로 대충 깔린 노란색 장판은 호사는 커녕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는 내부라는것을 한눈에 알수있을만큼 명확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쏙 들었다


내 계획은, 물위 집 한곳을 겨우 8천원을 내고 일찍 도착해서 강을 바라보면서 지는 노을과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완전히 새까만 어둠이 드리우면 평평한 땅에 누워서 빼곡한 별을 바라보겠다는 것이었다. 그정도면 된다. 더이상 바랄것이 없는 완벽한 숙소를 기대하면서 예약을 마쳤다






안타깝게도, 이른시간 도착해서 평상에 발을 걸치면서 지는 노을을 보고싶었던 내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에라완에서 돌아오던 길, 길에서 갑자기 퍼져버린 버스로 아주 오랜시간을 지체했고 이곳에 도착했을때는 아주 칠흙같은 어둠만이 있을 뿐 사진같은 뷰조차도 보이지 않을만큼 주변이 까맣게 변해있었고, 삐그덕거리는 나무를 조심스럽게 핸드폰 불빛으로 비춰가면서 물위 방에 도착했다


저물어가는 풍경을 만나지못한게 꽤 아쉬웠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잠들수는 없었다. 아직 쏟아지는 별도 남아있고, 가벼운 맥주한캔으로 오늘 하루를 되새겨야지.






조심조심 땅위로 올라와 늦은시간 주문이 되는지를 확인한 후 맥주와 간단한 팟타이를 시켰다. 허기진 배도 채우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싶었는데, 매번 이른시간에 출발해서 계속된 차안에서의 시간지연과 일정이 엉망이 되는것에 대한 스트레스와 긴 일과끝 녹초가 되버린 동생은 하루종일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침부터 밤시간까지 못마땅한 얼굴을 마주하던 나는 마침내 화가 터져버렸고, 결국 내 화에 동생은 울고말았다


미안하다면서 우는 동생을 앞에두고 마시는 맥주는 썼다. 이런 하루를 생각한게 아니였는데. 서로 같이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살면서 얼마나 될까 싶어서 매 시간 소중하게 여기고싶어 참았던 하루가 화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내가 여행을 헝클어버리고 말았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상황에서 반나절 넘게 차를타고, 산에 오르고 그와중에 신나서 물놀이까지 했으니 잠깐잠깐 눈돌릴거리가 생기지 않는 한 계속 지쳐있을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연차를 내고 어렵게 일정을 맞춰서 한 여행에서 내가 너를 울릴줄이야. 쏟아지는 별을 보기는 커녕 쏟아지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면서 미안해 하는 얼굴을 보면서 내 마음도 씁쓸함으로 가라앉았다






미안한 마음과 바보같은 사과만 서로 반복하다가 수상가옥으로 돌아와 몸을 뉘였다. 언제나처럼 머리를 베게에 대면 바로 5초안에 잠이드는 동생과 달리 나는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방은 네면이 모두 큰 창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방충망만 있을 뿐, 유리없는 창이라서 새벽 바람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기차시간에 늦지않게 일어나서 내일 일정은 행복하게, 힘차게, 무리없이 소화시키겠다고 혼자 다짐하듯 맹세하더니 알람을 5개나 맞춰놓고 잠든 동생을 가만히 보다가, 늦게까지 푹 자게두는게 좋을것같아 알람을 모두 없앴다. 새벽 찬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자는걸 보니, 여행에 익숙한 애도 아닌데 좋은 리조트에 묶게하면 분명히 더 행복해 했을텐데 싶어 후회감이 들었다


조용히 일어나 바닥에 널부러진 짐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가지와 젖은 수영복을 못에 걸어 말렸다. [지난번 같이 여행왔을때도 방을 지저분하게 쓰는일로 다퉜었는데]하는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애초에 알고있었다. 여행에서 다투기 쉽다는것을. [괜찮아. 여행가면 아무리 친한사람도 다투기 쉬운 상황에 놓여. 매번 힘든 상황이 생길때마 언니한테 바로 솔직하게 이야기해줘]라고 여행전에 여러번 이야기했었는데, 결국 울리고 말았다





새까만 적막속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와 두꺼비소리는 이곳이 아주깊은 시골같은 느낌을 주었고, 가끔 배라도 지나가면 이 조그마한 수상가옥은 파도에 휘청거렸다. 천장에 달린 전구는 방을 충분히 밝히기엔 어둡지만 숙면을 방해할정도는 아니였다


체력저질에, 미세한 소리에도 잠못들게 예민한 내가 여행 내내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던것은 계속 지쳐있는 동행자 때문이었나보다. 마음쓰이고 걱정하다보니 내가 피곤한것을 느낄수가없었다. 좋은걸 보게 해주고싶고, 스스로 많은게 마음에 담길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랬다. 맘약한 동행자가 잠들고 나니 새벽은 온전히 내시간이 되었다. 소박하고 낡은게 전적으로 내 취향에 들어맞았다. 별도 노을도 보지못했지만, 이 먼곳까지 동생을 데려와서 울렸지만 마음이 차분해졌다


[예상은 했지만, 꽤 좋은데?]싶은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지나가는 작은 배에도 자꾸만 휘청거려서 연인과의 뜨거운 밤은 어렵겠지만, 좋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차는곳에 있다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다시오고싶어지는데 이곳도 그랬다. 다만 다음번에는 새벽바람을 이길 담요를 하나 챙겨오겠지






태국에서 산 말린 쥐포안주는 실수로 강아래로 빠져버리고 물고기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내 안주를 훔쳐먹었다. 

안주없는 맥주한캔을 아껴서 해뜰때까지 마시다가 등뒤로 허겁지겁 잠에서 깬 동생이 늦잠을 잔것을 깨닫고 죄없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가 분명히 자기전에 알람을 다섯개나 맞춰놓고 잤는데 하나도 못들은건가?]자신없는 말투로 중얼거리면서 급하게 가방에 짐을 우겨넣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나와. 풍경이 예쁘다] 라고 말하면서 동생을 불러내자 미안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끌고나온 동생 눈에는 오늘 아침 풍경을 담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보였다. 늦게까지 자게 놔두려고 핸드폰 알람을 없앴다고 이야기하자, 그제서야 옆에 앉아서 쫑알쫑알 말이 많아지더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찰칵 찰칵 카메라 셔터누르는 소리가 난다.


어젯밤 촬영한 모드 그대로 카메라가 맞춰져있어서, 지금찍은 사진은 전부다 하얀컷일텐데. 말해주려다 말고 나는 내시간을 조금 더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나중에 보니 자동(automatic)모드로 물위에 떠있는 개구리밥과 내가 먹고남은 빈 맥주캔, 우리방 자물쇠와 찡쪽(어린도마뱀)과 내 도촬을 열심히 한걸보니 적어도 오늘아침은 어제보다 기운차고 여유롭다




 


알고있었다. 여행에서 다툼은 흔한일이라는걸. 정말 가깝고 사랑으로 모든것을 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과 함께해도 아주 사소한문제로라도 싸울수 있다는것을. 미리 알고 귀뜸까지 해놓고도 매번 이렇다. 언제나 다시는 함께할 날이 많지 않을것 처럼 소중한 마음으로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기대하고는 막상 와서는 시덥잖은 일들로 마음이 상하곤 한다


그리고 또 당연하게 다음번 여행을 기대하면서 같이 들떠있겠지.

추억을 공유하고 함께 여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것은 엄청 큰 행복이 확실하다


중간중간 나무가 떨어져 나가서 매번 내 손을 잡지않고는 올라오기 무서워한 경사진 손잡이 없는 나무다리, 조금 더 넉넉하게 사올걸 아쉬웠던 맥주와, 아마도 동생은 처음봤을 찡쪽, 저 자물쇠사진은 왜찍었을지 모르겠지만 동생이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동생에게 의미있었을 것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역시 다음번 동생과의 여행은 무난한 리조트가 좋을것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20160209 / 이 포스팅은 포털사이트 다음 오늘의 블로그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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