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배낭여행 ]

THE GIRL, COMES FROM FAIRY TALE



순간이동 차원의문같은 블루파이어와

키와이젠의 칼데라

분노와 고생속에 얻은 풍경




세모로라왕에서 이젠화산의 베이스캠프인 샘플빌리지까지 미니버스로 

8시간을 이동하자 또다시 아무것도 할수없는 밤 9시가 되었다


숙소에서 가볍게 저녁식사를 한뒤 숙소에 조그마한 온천이 있어서 몸을 담그고 

다음날 새벽일정을 체크하던 현지 가이드가 

추가비용을 내고 2시에 함께 출발할 것을 요청했는데 

블루파이어를 건너뛰고 

9시에 차분히 일어나서 등산하는 일정을 계약했기 때문에 강하게 항의했다


우리와 함께 이동하는 사람들이 모두 2시에 일어나서 새벽의 블루파이어를 보러가는데

한번에 이동하면 좋지않느냐면서 블루파이어를 보기위한 금액 1인 150,000루피아를 추가지불할것을 요구했다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어제 13시간 버스이동후 새벽4시기상후 등산, 오늘 8시간 버스 이동후 새벽2시등산

11시에 자고 2시에 일어나서 등산을 한다는것 자체가

몸의 무리라고 강하게 반대했고, 나는 내 일정을 고수하겠다고 밝혔는데

가스마스크 비용은 받지않을테니 같이 이동하자며 

거의 강매수준으로 스케줄에 우리를 우겨넣으려는 것을 보고

나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절대안돼. 내 계약대로 그대로 갈거야]하면서

의견을 좁히지않다가 큰소리가 오가기까지 했다






결국 그쪽에서 한다는 소리가

다른사람들을 8시에 이젠화산을 데리고 가면

돌아와서 우리를 데리고 갈 시간이 맞지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내 알바가 아니였다


말씨름도 지쳐서 [계약한대로! 절대안돼!]만 반복하고 있을때쯤

추가금액도 받지않을테니, 다른 사람들에게 금액적인 내용을 절대 말하지말고

제발 그시간에 같이 이동해달라는 이야기를 다른 가이드가 할때까지도 [싫어]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는데

우리를 태워다 줄 차가 없다는것이 마음에 걸린 동행인은 수락하자고 종용했다


사실 인도네시아에서 스케줄이 꼬이는일은 다반사고,

교통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없던 문제가 항상 생기는 그들의 성향상

대충 임기응변으로 고물차라도 가져올것을 알고있었지만

동행인은 좋은게 좋은거라고 언쟁 자체를 기피하는 사람이었다


이런식으로 애초에 수락했더라면, 

원치않던 금액의 스케줄비용은 물론 가스마스크 대여비까지 지불했을것이 분명했고

항상 그런식으로 해외에서는 사람이 호구되는거라고 화내고싶었지만

나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과 언쟁해서 남을게 뭐가있을까 싶어 말을 아꼈다


 



결국 11시부터 분노에 차서 한숨도 자지못한채 1시를 맞은 우리는

손대면 토ㅡ옥! 하고 터질것만 같은 예민한 상태로 등산을 시작했다


키와이젠화산은 등산난이도가 상당히 있는편이고 그 난이도조차 3단계로 나뉜다

매표소입구에서부터 중턱까지는 [약간힘듬] 

이젠화산 분화구가 보이는곳까지는 [힘듬] 

유황가스 분화구 블루파이어까지 내려가는것은 [위험]


한국에서 가장 높은산이 1950m 한라산인데 키와이젠은 2800m

나는 저런높이의 등산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내게 있어 3단계는 [매우힘듬] [죽을것처럼힘듬] [엄청나게위험] 이었다


참고로 등산로 입구에 비료를 운반하는 3발달린 조잡한 택시가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어른이 그 리어카에 사람을 태우고 산꼭대기까지 끄는것이라

보기만해도 마음이 여간 불편해서 차마 탈수없었는데, 올라가는 내내 후회하면서

그 리어카생각이 지워지지가 않았다


이미 함께 출발했던 일행들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곧 울것같은 나와 동행인만 남았는데 다음부터는 절대 산을 타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내가 구름속을 걷고있어도 아무런 감흥이 없고

그냥 죽을것같다 싶을만큼 체력적으로 힘듦 뿐이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정상에 도착했을때

푸른 칼데라를 볼수 있었는데


단 한번도 백록담이라던가 백두산 천지같은 칼데라를 실제로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속 급경사로를 네발로 기어서 오르면서 구름속을 헤짚고 도착한것에 대한 미약한 시각적 보상을 이뤘다


마그마로 인해 화산 꼭대기부분이 무너져내리고 그 안에 물이 고이는 것은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일본의 아소산도, 제주도의 한라산도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차일피일 미뤘었는데

체력이 필요한 여행앞에서 나는 자꾸 주저할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산 정상에 와서 칼데라까지 보았지만

이제 내가 계약하지 않았던, 칼데라안쪽으로 들어가는길의 블루파이어를

향해 3단계의 마지막인 [위험]에 도전해야한다


1인 25,000루피아(2천원정도)짜리 가스마스크를 쓰고 

유황가스와 화산재를 참아가면서 날가로운 길을 내려가는데

비 흡연자인 나는 마스크없이도 숨쉬는게 문제없어서 마스크를 던져버렸지만

폐기능이 좋지않거나 흡연자인 일행들은 가스마스크 없이는 숨쉬기조차 버거워했다


거기다 어둡기까지 하니, 서로 조명을 잘 비춰줘야하는데

이렇게 온갖 장비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조심조심 내려갈 동안

유황을 채취하는 인부들은 쪼리를 신고

안전장비 하나없이 저 무거운 돌을 나르고 있으니

생계앞에 파리목숨같은 상황이지 않은가


저 바구니의 유황 무게가 평균 100kg인데

50kg 정도밖에 되지않은 삐쩍마른 노동자들이 맨손으로 채취해서 운반하는것이다

부모의 일을 물려받아 가업처럼 노동을 잇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삶에찌든이의 주름이나 표정]이 보이지 않고 해맑아서

사실 많이 놀랐다






[위험]구간을 무사히 내려왔더니 바위 사이사이에서 블루파이어를 만났다

저 불꽃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맵이 열리는 게임속의 차원문이 이곳저곳에 열려있었는데

새파랗게 타오르는 푸른 불길이 한참을 보고있어도 신기했다


여행을 다니기 전에는, 게임속에 구현된 많은 새로운 공간들이

[기획자와 디자이너의 능력치]라고 생각했는데

여행을 다니고난뒤로는 가상현실속의 거의 모든 공간은 

이미 현실속에 존재한다는것을 매번 발견하고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게임 개발자인 동행인과 그저 매사가 신기한 나는

많은 인파속에서 꺼지지않는 블루파이어를 감상했다


천연가스가 화산의 열과 만나면서 가스렌지에 불이 켜지듯이 푸른불꽃을 품어내는것인데

공기중에 있는 가스가 화산의 열이 만나서 자연방화가 되고있다니

확실히 가파른 지형에서 낙사사고가 가능하기때문에 [위험]이 붙은것은 아니구나 싶다




아직도 새벽의 푸른기가 가시지 않는 시간

다시 칼데라가 보이는 정상으로 올라왔다


미드에 출연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에 나올법한 동양인의 발음 그대로 

[베리 스페셜! 온리포유!]를 반복해가면서 블루파이어를 판매하려던 

한스어드벤처의 한사장은 결국 이 프로그램을 강매시키지는 못했고


죽어도 새벽1시에 일어나서 등산하지 않으려고 버텼던 나는

당장 오늘이 걱정되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키와이젠트래킹을 마치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고나면

힘들었던 시간은 새까맣게 잊고 이젠화산의 풍경과 블루파이어만이 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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